30년 목회 마무리 한 청주 상당교회 정삼수 목사 인터뷰

지난해 12월 27일에 열린 정삼수 원로목사 추대 감사 기념예배에서 상당교회 45명의 장로들이 정 목사의 18번지인 '당신을 모르실거야'를 합창하며 그동안의 감사를 전했다. 이날 많은 장로들이 눈물을 흘렸고 정 목사는 이 노래의 가사는 마치 하나님이 자신에게, 또 자신은 교우들에게 전하는 사랑과 같아 자신의 18번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청주시 미평동 언덕에 우뚝 서있는 상당교회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메머드급 교회다. 항구에서 막 출발하려는 듯한 배 형상에 크게 써있는 '행복한 청주'라는 글씨 때문에 건축 초기에는 "이 곳이 청주시청이냐"는 문의가 많아 그 옆에 '상당교회'라는 글씨를 넣게 되었다고 한다. 1976년 서남교회 창립 20주년 개척교회로 시작한 상당교회는 2002년 이 곳으로 옮겨왔고, 현재 신도 수만 7천명에 이른다. '행복한 청주, 정직한 시민'을 슬로건으로 지역사회와 함께 해온 상당교회 중심에는 1985년 부임한 정삼수 목사(70)가 있었다. 신앙인들에게는 '사랑과 은혜를 일깨우는 설교'로, 비신앙인들에게는 '어느 유명 석학의 강연보다 유익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정 목사가 지난해 12월 27일 원로목사 추대 감사예배를 마지막으로 35년간의 목회생활을 마쳤다. 또한 후임목사 초빙 과정도 잡음없이 '교회축제'로 이루어져 또 하나의 신앙적 모범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9일 상당교회가 지난해 개관한 산남동 '크리스찬 하우스'에서 정 목사를 만나 그동안의 소회와 새로운 계획을 들어봤다.



▶1985년 목회를 시작해 35년 간의 목회생활을 마치셨는데, 소감이 어떠신지.

- 하하하. 너무 행복하다. 숙제를 끝내고 상 받은 어린아이처럼 마냥 즐겁다. 이제 또 하나의 일을 찾을 거다. 바로 이 곳 '크리스찬 하우스'가 그런 곳이다.

▶이 크리스찬 하우스에서는 어떤 일을 하시게 되는지.

- 이 곳은 마음이 아픈 사람들, 마음 둘 곳이 없는 사람들, 인생을 어찌 살까 염려되는 사람들이 와서 서로 마음을 나누는 '친구의 집'이다. 상당교회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이 곳은 1층 카페, 무료 체력단련실, 2층 충청노회, 해피타트, 성시화본부, 의사선교회, 상담실, 3층 게스트룸, 4층 아가페홀을 갖추고 있다. 특히 게스트룸은 외국에서 돌아온 선교사들이 마음 편하게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한 공간이고, 4층 아가페홀은 세미나, 파티가 가능하고 다문화 가족이나 재혼커플 등 누구나가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청주에 있는 700여 교회가 모여 네트워킹 할 수 있는 곳으로 활용하고, 나는 이 곳에서 지난해부터 목사 40명을 대상으로 매월 1회 크리스찬 아카데미 '빌더 더 처치(Builder the church)'를 열고 있다. 1970년대 강원용 목사가 이끈 서울 크리스찬 아카데미 하우스가 '민주화의 산실'이라면, 우리의 이 크리스찬 하우스는 외로운 사람들이 정을 붙이는 '사랑화의 산실'이 될 것이다. 나는 여기서 프리랜서로, 행복과 사랑전도사로 일할 계획이다.

▶상당교회도 건물 외형뿐 아니라 1·2층이 하나로 연결되는 계단식 예배당, 넓은 주차장 등 독특한 설계가 눈길을 끄는데…

- 사실, 처음에는 언덕에 비둘기가 앉아있는 형상으로 할려고 했는데 교회가 크다 보니까 노아의 방주처럼 되어 버렸다. 상당교회는 어디서나 출입이 쉽고, 예배당 어디에 앉아도 다 똑같이 강단이 보이도록 설계했다. 고전적인 교회 건물이 아니고 누구나 올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건물 위에 '행복한 청주'를 붙였고, 종탑에는 '정직한 시민'이라고 붙였다. 이것이 나의 소망이자 상당교회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그동안 모범이 되는, 또 샘플이 되는 목회활동을 하셨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스스로 잃지 않고자 한 것은 무엇인지요.

- 정직이다. 특히 나 스스로에게 정직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유능한 감사가 와도 자신이 있다. 철저하게 공과 사를 구분해 왔다. 평생 나를 지탱해 온 성경 귀절은 요한 복음 21장 15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다. 이 말씀 때문에 교직에 있다가 뒤늦게 목사가 됐고, 이 말씀이 또 나의 목회방향이 됐다. 그동안 나는 "네"라는 대답을 하지 않고 삶으로 말해왔다.

▶항상 온화한 미소와 소년같은 맑음을 얼굴에 지니고 계신데,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 욕심만 없으면 된다. 나는 목회자로서 하나님을 가졌기 때문에 더 높아질 이유도 없고, 더 가질 이유도 없다.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욕 먹을 이유도 없고, 비굴해질 이유도 없다. 그리고 또 평범하게 살면 된다. 그 평범함이 변하기 힘든 청주에서 기적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내 목회의 방향은 '행복'이다. 어떻게 하면 성도들을 행복하게 할까, 어떻게 하면 성도들을 기쁘게 할까가 머릿속에서 떠난 적이 없다. '한 사람도 나를 미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한 사람도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가 나의 슬로건이다. 그러나 살다보면 나를 미워하고 배신하는 사람이 왜 없겠나. 그럴 때 '나는 그를 사랑하나 그는 나를 미워하니 오직 기도한다'라는 성경 말씀을 실천한다. 나는 우리 교우들로부터 참 사랑 받았다. 제일 큰 고민이 '어떻게 30년 하고도 5개월 동안 머문 이 사랑하는 교회를 떠날까' 였는데, 하나님께서 그 마음도 깨끗하게 정리케 하셨다. 그 또한 감사하다.

▶그래서 후임목사 초빙과정도 공정하게 세대교체를 이뤄 또 신앙적 모범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 새로 부임한 안광복 목사를 보면 마치 내가 강단에 서 있는 듯하다. 우리 교우들이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행복해 한다. 나는 해방, 6·25, 4·19, 5·16을 모두 겪은 어려운 사람인데, 신임 목사는 신학적 깊이와 경험을 겸비한 신세대여서 교우들에게 새로운 것 같기도 하다. 여호수아에서 보면 모세는 죽고 여호수아가 나온다. 그래서 나는 아내와 함께 평신도로 돌아가 7시 30분 주일예배 후 바로 예배당을 나온다. 바통을 넘겼으면 다음 선수가 힘껏 뛸 수 있게 뒤로 빠져야 한다. 그 또한 평범한 진리 아니겠나.

▶지난해 12월 27일에 있었던 '원로목사 추대 기념예배'때 참석자들을 살펴보니까 형제들, 첫 전도사 부임 동기들, 군대 동기들, 취임예배때 축도해 준 목사님 등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참 복이 많으시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그렇다. 내가 신학교 1학년 때 서울 신촌 연세대 앞 대현교회에서 첫 교육전도사를 했는데 그때 첫 목회를 본 사람들이 나의 은퇴예배도 보게 된 것이다. 나의 처음과 끝을 봤다는 것이 무엇보다 감사하다.

▶갈수록 각박해져가는 현대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평범하게 살면 된다. 그런데 평범한 것이 비범한 세상이 되었다. 나는 치매에 걸린 장모님을 14년 동안 집에서 모셨다. 병든 부모님을 모시는 게 당연하고 평범한 일이지 않나. 그런데 그런 당연한 일을 비범한 일로 생각한다. 단순하게, 평범하게 살면 그 속에 행복이 있는 것이다. 그 행복을 명예로 돈으로 채우려고 하다 보니까 평생 못채우는 거다. 특히 신앙인은 신앙 따로, 사회생활 따로, 두 개의 가치관을 가지면 안된다. 신앙인답게 먼저 양보하고, 먼저 인사하고, 그렇게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

정 목사는 인터뷰후 엘리베이터를 마다하고 계단을 한층 한층 내려오며 제2인생을 열어줄 '크리스찬 하우스'의 공간을 하나 하나 설명하고, 건물 입구 동판에 새겨진 머릿글을 읽어주며 "누구나 찾아와 사랑과 고통을 나누고 같이 노래하고 같이 기도하는 친구의 집"임을 거듭 강조했다. 한 줄 한 줄 애정을 담아 머릿글을 읽는 노(老)목사에게서 이젠 '더 넓은 세상을 대상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깊은 사랑'을 전하고자 하는 진심이 묻어났다. / 송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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