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실장·대기자

올해부터 공직사회에 '여가활용형 근무시간제'가 도입된다는 소식이 직장인들 사이에 잔잔한 화제가 되고 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한시간씩 더 일하고 금요일엔 오전만 근무하고 퇴근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주 5일 근무제가 아니라 주 4.5일 근무제가 된다. 또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자발적 서머타임제도도 도입된다. 반면 초과근무는 금지된다. 시간 때우기식 잔업으로 수당이나 챙기는 것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금요일 오후부터 주말이 시작된다면 쌍수로 환영할 공무원이 많을 것이다.

삼성그룹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의 공직사회 혁신 시리즈 최신판이다. 직장에서 잡무에 시달리면서 주중에는 밤늦은 시간에 퇴근하고 때론 주말에도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들은 부러워 할만하다.

이근면 처장은 30년 넘게 인사관련업무를 맡으며 글로벌 기업 삼성 인사시스템의 뼈대를 만든 장본인이다. 인사난맥상으로 정권초기부터 십자포화를 맞았던 청와대 입장에선 '히든카드'였다. 공직자 출신이 혁신을 추구하기엔 한계가 있다. 그는 취임때 "인사혁신처에 혁신이란 이름을 붙은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국민의 눈높이 수준까지 혁신하고 개혁하겠다"고 말했다. 매우 믿음직스러운 말이지만 실행 할 수 있는지는 별개다. '변화와 혁신'은 흔히 쓰이는 말이지만 실천하긴 힘든 말이다.

연금개혁으로 지금은 예전만 못하다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지만 공무원은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다. 수십대일부터 최고 수백대일의 경쟁률이 이를 말해준다. 신분보장이 확실해 웬만하면 정년까지 간다. 연간 수조원의 이익을 내는 글로벌기업들도 경기가 조금만 위축돼도 대대적인 구조조정이나 인력감축을 단행하지만 공직사회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철밥통이라고 불리지만 공무원들은 "그 철밥통에 제대로 밥을 채워준적이 있느냐"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대기업에 비해 급여가 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국민들 시각은 다르다. 전경련이 작년 11월 발표한 '2014년도 소득분위별 근로자 임금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임금근로자 100명 중 소득 상위 50번째 근로자의 연봉(중위소득)은 2천465만원에 불과했다. 물론 고액연봉자도 많았지만 '4천만원 미만∼2천만원'(523만6천490명·37.3%), '2천만원 미만'(524만3천576명·37.3%)이 대다수였다.

반면 정부가 지난 5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공무원 보수·수당 규정에 따르면 6급 평균은 4천만원대, 5급 평균은 5천만원대였다. 성과금과 각종 수당은 제외한 것이 이렇다. 멀쩡한 대기업 직원들이 직장을 박차고 나와 공무원 시험을 치르는 것은 근로자 평균임금보다 많은 급여에 직업안정성이 뛰어나다는 점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특혜도 많다. 대표적으로 최근 몇년새 세종시로 이전한 중앙부처 공무원들 중에는 아파트분양 특혜로 목돈을 쥔 사람이 꽤 된다. 정부가 이들 공무원을 대상으로 아파트를 특별공급했기 때문이다. 16개 중앙행정기관이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공무원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마련한 제도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이 제도를 철저히 악용해왔다. 일부 공무원은 분양권을 웃돈을 받고 되팔아 전매차익을 남겼다. 두채를 특별 분양받은 공무원도 있다. 2010년 첫 아파트를 공급한 지 5년이 지나면서 처음 특혜를 받은 공무원 가운데 아파트 분양 1순위 대상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아파트 매매과정에서 취득세도 면제됐다. 심지어 국토교통부와 국세청 공무원 중에도 분양권 장사를 한 사람이 있었다. 무려 3천여명의 공무원들이 이런 수법으로 재산을 축척했다는 보도는 수많은 서민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물론 공무원 조직을 폄하할 의사는 없다. 대한민국이 광복과 전란, 보릿고개를 딛고 선진국 진입을 앞둔 것은 사명감을 가진 공무원들의 역할이 컸다. 당연히 합리적인 대우는 필요하다. 하지만 공무원은 연간 순익만 수조원씩 내는 재벌기업 임직원과 다르다. 치열한 경쟁이 없는 공무원들에게 과도한 대우는 국민정서에 반하고 공무원을 매너리즘에 빠트리게 한다.

미래학자인 '엘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라는 저서에서 "기업은 시속 100마일로 변화하는데 정부는 25마일, 정치조직은 3마일, 법과 기관은 1마일로 변한다"고 지적했다.

공직사회의 변화속도는 느리거나 변화를 싫어한다. 이런 공직사회를 인사혁신으로 바꾼다고 한다. 역대 정부가 공직개혁을 추진했지만 성과를 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공직개혁 하기전에 공직자 특혜만 없애도 반은 성공할 것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