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동아시아문화도시 사무국장

몰아치는 칼바람 속에서도 겨울이 아름다운 것은 하얗게 눈물처럼 내리는 눈, 눈들이 소복이 쌓여 어머니의 대지를 품으며 보석 같은 생명의 씨앗 하나 심어 햇살 가득한 어느 봄날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길 없는 숲과 같아 방황과 번뇌로 뒤척이는 날이 많은데 칼바람 속을 뚫고 산정높이 올라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지 신 새벽의 처녀성으로 하늘을 보며 다짐한다.

가난하게 서라. 아픔을 딛고 일어서라. 내 삶의 상처는 위대한 창조의 건배, 바람부는 날 집을 짓고, 눈 오는 날 생명의 씨앗을 뿌려라. 내 안에 잠자고 있는 작은 영혼을 눈 뜨게 하라. 회개하고 참회하며 고백하고 용서하라. 구걸하지 말고 피와 땀과 눈물로 증거하라. 새 날은 준비된 자에게만 영광의 빛으로 오고, 진정한 사랑은 상처를 허락하며 누군가를 위해 삶의 여백을 만드는 것이다. 미칠듯한 몰두가 있어야만 위대한 예술이 탄생되는 것이니 그 찬란한 성장통을 허락하자.

새 해 아침, 산에 올라 이렇게 다짐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건강과 사랑과 평화, 그리고 부귀영화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기도발이 먹혀 이 세상이 욕망으로 얼룩지고 이기와 아집과 악의 무리가 창궐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진정한 사랑을 빚을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달라고 소망했다. 우리곁의 작은 영웅들이 많은 세상, 그들과 함께 손에 손잡고 가장 아름다운 날을 일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소망했다.

지난 일 년 동안 동아시아문화도시라는 이름으로 가슴 뛰는 수많은 일들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동아시아 문화도시의 속살과 그들이 빚는 꿈의 현장을 숨가쁘게 돌아보았다.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쁨이자 영광이었지만 가장 큰 결실은 도시마다 작은 영웅들을 많이 만들어야만 그들이 도시를 가꾸고, 문화를 빚으며, 예술을 변주하고, 새로운 미래를 펼친다는 시대정신을 확인한 것이었다.

우리는 마천루 골목에서 자신들의 욕망과 이기만을 쫓고 이해관계에 얽혀 왜곡되거나 굴절된 현상을 만들어 오지 않았던가.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마치 도시의 주인인양 착각을 하거나 도시 발전의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을 잊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폐쇄적이거나 갈등이 심한 도시일수록 이같은 현상은 두드러진다. 반면에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협력하는 도시일수록 문화적으로 성숙되고 콘텐츠가 풍부하며 삶의 향기로 가득하다.

일찍이 세종대왕은 넓게 보고 깊이 파고들면 스스로 귀한 존재가 된다고 했다. 동아시아문화도시 청주와 시민 모두가 매력이 넘쳐나야 한다. 매력시민, 개성시민, 문화시민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개인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 그 가치를 문화적으로 성숙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회, 불신과 반목에서 이해와 협력과 상생으로 꽃이 피는 사회, 그리하여 청주라는 도시와 사람들이 마음껏 희망하고 마음껏 노래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미 우리는 청주의 문화콘텐츠와 청주 사람들의 문화적 활동이 동아시아를 대표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중국과 일본의 수많은 시민들이 청주정신에 감동하고 청주 사람들의 끼와 열정에 눈물 흘리지 않았던가. 그 가능성의 확장에 공감하고 동참하고 새로운 길을 닦아야 한다.

인생은 길 없는 숲과 같다고 했다. 그 숲에서 삶의 향기가 끼쳐오는 것은 오직 그 숲을 가꾸는 사람의 몫이다. 상처받지 않고 행복해지는 유일한 길은 생명문화를 중시하고 소소한 풍경을 가슴속에 담으며 관계의 힘을 믿는 것이다.

올 해는 청주사람 모두가 작은 영웅이 되면 좋겠다. 어린애서부터 청소년, 공무원, 직장인, 정치인, 예술인 모두가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가치를 발휘하는 아웃라이어가 되면 좋겠다. 그리고 서로를 따뜻하게 보듬고 배려하면 더욱 좋겠다. 그리하여 청주라는 거대한 숲에서 삶의 향기 가득하고, 그 향기가 세계인들의 가슴에 진한 울림으로 다가가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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