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박현수 숲해설가

올겨울은 따뜻했습니다. 들판에 나가서 바람을 맞으며 겨울바람인지 봄바람인지 혼동될 정도로 바람마저 겨울답지 못 했습니다. 새해를 맞아 세웠던 계획이 질퍽거리는 땅처럼 녹아내릴 때 이제 한파가 다가왔습니다. 정신 차리라는 계기가 된 듯 찬바람에 코끝이 찡해져 머리가 맑아집니다.

물이 흐르는 곳은 겨울 철새들의 서식지입니다. 그중에서 물이 모이는 천에는 많은 새들이 삶을 이어가는 보금자리 겸 휴식지가 되어줍니다. 무심천과 미호천 역시 이러한 하천의 생태적인 특성을 잘 갖고 있습니다. 넓은 하천변과 수풀, 그리고 중간중간의 모래톱들 천 옆으로는 넓은 곡창지대까지 물새들이 자리 잡기 좋은 곳입니다.

특히 미호천의 합강 지대는 중부 내륙에서 철새들이 휴식하기 가장 좋은 곳으로 많은 철새들이 이곳에서 월동을 하거나 휴식을 거쳐 남쪽으로 이동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합강에는 청둥오리와 비오리 일부 그룹만 있을 뿐 더 이상 새들을 볼 수 없습니다. 합강 일대에 4대강 공사와 세종시 공사가 이루어졌거나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많던 철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새해 들어 무심천과 미호천이 만나는 작천보 일대의 새를 관찰했습니다. 몇 년 사이로 겨울 철새가 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검은 섬처럼 모여드는 철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무심천에서 언제나 만날 수 있는 흰뺨검둥오리, 알록달록하고 꽥꽥 울음소리가 울창한 청둥오리, 회색의 수수한 알락오리, 머리털을 바짝 세우며 갈퀴 같은 부리와 흰 몸을 갖고 있는 비오리, 목에 흰 선이 아름다운 고방오리, 넓은 부리를 갖고 있는 넓적부리, 이마부터 정수리에 붉은 황색의 털이 있어 이름 붙여진 홍머리오리, 몸집이 작지만 화려한 쇠오리, 부리에 혹이 있는 혹부리오리 등의 오리들이 자유롭게 물을 헤집고 다닙니다.

며칠 전 큰고니 한 쌍이 왔습니다. 그 우아한 자태로 물을 부드럽게 타고 다닙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돼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갔다가 차갑게 홱 돌아서버려 멀리 떠나는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아야 했습니다. 이제 포기할까 돌아서는 순간 큰고니가 다시 천천히 다가옵니다. 희고 긴 목을 걸그룹처럼 서로 동작을 맞춰가며 흔들거리며 다가옵니다. 큰고니의 울음소리가 가까워지는 순간 점점 몸을 움직일 수 없어 굳어버린 자세로 한동안 서있었습니다. 가끔은 다른 생명이 갑자기 다가오는 순간 당황되기도 하는데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나 봅니다.

오리 중 귀여운 황오리가 있습니다. 예전에 미호천 하류 합강에 대규모로 볼 수 있었으나 최근에 작천보 일대에서 몇 백 마리를 만나곤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수 십 마리 정도만 있어서 미호천을 따라 찾아보았습니다. 오송에서 세종시로 들어가는 다리 밑에 황오리 떼를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늘 높이 날아가는 황오리의 날갯짓은 흰색과 검은색이 뚜렷이 보여 황홀하게 아름답습니다.

무심천에는 겨울 철새 말고도 많은 새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겨울의 특성상 풀들이 죽고 나뭇잎도 떨어져 새들을 더욱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먹이 활동이 더욱 힘든 겨울이라 맹금류들의 모습들도 하늘에 떠있는 사냥하는 상태로 자주 목격됩니다. 아마도 일 년 중 가장 오랫동안 하늘을 보는 계절이 아닐까 합니다. 황조롱이, 큰 몸을 하늘에서 정지한 모습으로 날아있는 큰말똥가리, 전봇대에 가만히 앉아서 볕을 쬐고 있던 말똥가리도 모두 무심천 일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깃줄에 앉아서 콩알 콩알 떠드는 콩새들과 논밭을 헤집고 다니는 멧비둘기까지 모두 하천 주위의 생명들입니다. 한 가지 더 특이한 것은 무심천에 사는 갈매기입니다. 내륙에도 갈매기의 서식이 있긴 하지만 흰색의 갈매기가 잉어를 먹기 위해 낑낑대는 모습이 웃기기만 합니다. 이렇게 시간이 가면서 생명들의 삶은 변함없이 이어져 갑니다. 우리가 새해를 맞이하며 다시 살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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