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의 상인(商人)으로 이름을 날린 거상 임상옥(林尙沃:1779~1855)은 특히 중국과의 인삼무역을 하면서 출중한 상도(商道)를 발휘했다.
 1821년, 변무사(辨誣使)를 수행하여 청나라에 갔을 때의 일이다. 북경의 상인들이 서로 짜고 임상옥의 인삼 값을 곤두박칠 치게 했다. 고려 인삼이라고 하면 중국에서 최고로 인기가 있는 품목일 터인즉 북경상인들은 이른바 불매(不買)동맹을 맺고 아무도 인삼을 사지 않았다.
 타국땅에서 오래 머물고 있는 그에게 물류비용 부담은 엄청나게 늘어갔다. 인삼의 신선도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체재비 또한 만만치 않았다.
 임상옥은 중국 상인들의 이러한 농간에 의연히 맞섰다. 인삼을 한군데 모아놓고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에 놀란 중국 상인들은 인삼의 소각을 만류했고 그통에 인삼 값은 수십배나 껑충 뛰었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도 인삼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막대한 이익을 남긴 효자 상품이었다. 개성에 증포소(蒸包所)가 있었는데 이는 홍삼 제조공장을 일컫는다. 1908년에 공포된 홍삼전매법이 말해주듯 인삼의 판매는 국가가 전담하였고 일제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는 바뀌지 않았다.
 규장각에 소장된 구포건삼도록(九包乾蔘都錄)에 의하면 인삼은 개성에서 재배된 것을 최상품으로 치고 대체로 6년이 되면 큰 것은 중건하여 중국 등에 수출하고 나머지는 생으로 말려서 국내의 약재로 사용하였다 한다.
 인삼의 뿌리는 비대근(肥大根)인 원뿌리와 여러 개의 지근(支根)으로 구성돼 있다. 그 지근의 갈라진 모습은 마치 사람의 모습과 비슷하다.
 인삼의 효능은 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이미 밝혀졌다. 오래전 부터 불로장생의 명약으로 알려졌으며 익기(益氣), 경신(輕身), 강장, 항암 등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검증된 바 있다.
 1백여년전 이탈리아 외교관인 까를로 로제티는 한국의 풍물중 인삼을 보고 이렇게 적고 있다. 『인삼은 신비로운 식물로서 야생지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한국의 만병통치약으로 정부가 독점한다. 몇년전 인삼 작황이 좋은 때가 있었다. 정부는 이 일이 중국의 구매자들에게 알려져 가격이 폭락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 결국 정부는 관보로 칙령을 공포했다. 인삼의 수확량이 지난해에 비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안 황제는 모월 모시 노제섬 봉우리에서 인삼 70상자를 불태우라고 명령했다...』(꼬레아 꼬레아니, 서울학연구소)
 인삼에 얽힌 이야기는 무수히 널려있다. 한 겨울에 노환이 든 부모를 위하여 천길 벼랑에서 산삼을 캐, 병 구완을 했다는 효자의 이야기도 있다.
 신비의 명약 인삼은 이제 세계적 상품이다. 최근 한국인삼공사가 진천군 초평면으로 주한 외교사절들을 초청하여 인삼을 직접 캐보는 「인삼 투어」를 가졌다. 체험을 통한 인삼의 홍보 효과를 기대해 본다. lbm@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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