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노근호 충북테크노파크 정책기획단장

올 초 세계 최대의 가전 박람회인 'CES 2016'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다. 금년에 50회를 맞을 정도로 긴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 연중 가장 먼저 개최되는 행사인 만큼 전 세계인들의 관심이 높다. 이번에도 많은 화제를 모으면서 폐막했다.

행사의 성격이 변하고 전시규모는 커졌으며 볼거리도 풍성해졌다. CES를 주관하는 게리 샤피로 CTA 회장은 개막일 기조연설에서 이번 행사를 통해 '혁신 이후의 혁신(innovation after innovation)'을 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CES에서는 존 체임버스 시스코 회장의 기조연설 주제가 '빠른 혁신 : 파괴하느냐 파괴당하느냐'였다. 이 당시도 신기술 트렌드의 변화가 매우 빨라지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10년 내에 현존하는 주요 기업 중 40%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일 년 사이에 빠른 혁신 그 이후를 논할 정도로 광속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박람회의 몇 가지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CES가 다양한 기술을 선보이는 주 무대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이 행사의 주관기관 명칭이 기존 미국 소비자가전협회(CEA)에서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로 바뀌었다. 그간 가전기기에 한정돼 있던 틀을 깨고 자동차, 3D프린터, 드론 등 최첨단 기술을 포괄하는 혁신성의 상징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화된 기술을 중심으로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또한 지난해의 미래 기술들이 빠르게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에는 실물 없이 설계도와 계획만 들고 나온 업체도 주목을 받았지만 금년에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업체가 대거 참가했다. 수년전과는 달리 사물인터넷(IoT)과 결합된 새로운 먹거리들이 다수 등장했다. 그 실체의 핵심에는 인공지능 기술이 자리하고 있다.

한편 기업 간 합종연횡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종산업 간의 IT융·복합 기술이 전 산업으로 확산되면서 CES에 참여하는 기업들의 범위가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특히 자동차 분야에서는 포드와 아마존, 볼보와 마이크로소프트, BMW와 삼성전자, 다임러와 퀄컴 등이 짝짓기를 통해 새 활로를 모색 중이다. 구글과 애플은 독자적인 자율주행차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런데 이면에는 자동차 업체들의 위기의식이 숨어 있다. 하드웨어의 자동차 기업과 소프트웨어의 IT기업이 사업재편을 통해 시너지를 내는 모양새지만 속내는 다르게 해석된다. 이와 관련해서 파이낸셜타임스는 아이폰 등장 이후 노키아와 블루베리 등 휴대폰 시장의 강자들이 쓰러졌던 것처럼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의 등장으로 기존 자동차 업체들의 지위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지금까지의 흐름에는 글로벌 경기 침체와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면서 기존 비즈니스모델로는 생존하기 어려운 경제 환경도 한몫하고 있다. 기업의 성장이 정체되면 새로운 돌파구로서 다른 회사를 인수·합병(M&A)하는 방법을 구사하는 것과 비슷하다.

결국 각 기업들이 불확실한 신사업에 직접 진출하기보다는 협업을 통해 잘하는 분야에 집중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만들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CES에는 2014년에 웨어러블 기기, 3D프린터와 드론, 2015년에 IT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자동차가 등장했고 올해는 많은 완성차 업체들이 자율주행차와 전기차를 선보였다. 융·복합 기술의 광폭 진보와 가시적인 성과로 놀라운 신세계가 출현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충북의 대표산업군은 사물인터넷(반도체 칩, 센서, 배터리, 디스플레이), 에너지신산업(태양광, 이차전지, 전기전자부품), 지능형자동차부품(동력기반기계부품, 전기전자부품)의 기반이 되는 업종들이다. 지역의 기업 및 기술 간 경쟁구도를 개방·협력 모드로 전환시켜야 한다. 사기(史記)에 나오는 견미지저(見微知著), 즉 사소한 것을 보고 장차 드러날 것을 알 수 있다는 고전의 지혜를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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