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며칠 전부터 갑자기 쌀쌀해졌습니다. 자꾸 움츠려져 자라목이 됩니다. 올 겨울엔 눈도 별로 내리고 않고 그리 춥지도 않은 탓에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일주일 몇 번씩 운동 삼아 집 근처 호암지를 한 바퀴 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 며칠 강추위에 탓에 가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안 되겠다 싶어 내복까지 꺼내 입고 모자도 푹 눌러 쓰고 호암지를 찾았습니다. 호암지는 아주 오래 전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든 저수지지만 지금은 생태공원도 있어 갖가지 수생식물 등 볼거리가 많습니다.

봄부터 겨울까지 호암지의 풍경은 참 아름답습니다. 오늘은 꽁꽁 언 얼음 탓인지 바깥쪽 한 군데 얼음이 녹아 있는 곳에 오리 떼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모두 까만색이었습니다. 호암지에서 오리를 그렇게 가까이 본 적이 없어 걸음을 멈추고 눈 맞춤했습니다. 반질반질 윤기 나는 털을 가진 오리들은 무얼 잡아먹는 것인지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듯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까만 털이 젖지 않고 또 반질반질했습니다. 만약 물에 축축하게 젖었더라면 오리들이 이 추위에 더 춥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 것을 보면서 세상에는 모두 제각각 타고 난 모습이 있구나, 잠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에 또래들에 비해 무거운 물건을 옮길 만한 큰 힘이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무거운 운동기구를 나르거나 화단에 풀을 뽑는 등 선택을 하라고 했습니다. 친구들은 제각각 선택을 했습니다. 저는 풀 뽑기를 선택했습니다. 뜨거운 볕이 내려쬐었지만 힘이 별로 없는 제겐 딱 좋은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잡초가 뽑힌 화단을 보니 속도 후련하고 꽃들이 잘 클 생각에 기뻤습니다.

"야, 난 가만 앉아서 하는 건 질색이야. 힘들어도 이게 더 낫지."

풀 뽑는 나를 보며 운동기구를 나르는 친구가 한 말입니다. 그 친구는 평소에도 활동적인 것을 좋아했습니다. 아마 선생님이 선택권을 주지 않고 각자 할 일이 정해져 혹시 그 친구와 일이 바뀌었다면 둘 다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보면 너무 같은 모습을 만들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분명 타고 난 각자의 장점을 갖고 있는 데도 말입니다. 무엇이 예쁘다, 싶으면 모두 그 모습을 따라 하기 바쁜 세상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유행은 있겠지만 자신의 멋과 개성을 살리지 못해 아쉬움이 큽니다.

호암지 오리들이 여전히 물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바쁩니다. 지금 추위가 물러가고 나면 다음 달은 3월. 슬슬 호암지에도 봄이 오겠지요. 호암지의 봄은 한 폭의 수채화 같습니다. 나무들마다 연둣빛 물이 오릅니다. 가까이서는 모르지만 멀리서 보면 겹쳐진 나무가 연한 연둣빛으로 보이지요. 노란 개나리 물결과 하얀 눈뭉치 같은 주먹만 한 목련은 눈길을 떼기가 어렵지요. 붉은 명자 꽃은 숨 막히게 피고요.

봄바람이 불면 하르르 나리는 하얀 벚꽃 잎이 호암지 물결 위에 내려앉습니다. 그리고 나이테처럼 번지는 물결 위에 둥실둥실 근사한 풍경을 만들어 줍니다.

호암지에는 나무도 꽃도 참 다양합니다. 그렇게 모여 한 폭의 수채화를 만들어 줍니다. 제각각의 모습을 살리기에 더 아름답습니다.

제각각의 모습…. 그래요. 작은 곤충도 새들도 꽃도 나무도 그리고 사람에게도 제각각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 제각각의 모습이 빛날 때 우리는 행복하고 세상도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오늘은 거울 앞에서 나의 어떤 모습이 진정 아름다울까 마음속까지 비춰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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