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실장·대기자

도종환(62)은 '천상' 시인이다. 나는 학창시절 지금은 국회의원(더불어 민주당)인 도종환 시인의 사별한 부인이 운영했던 '공간'이라는 이름의 커피숍 단골손님이었다. 일찍 세상을 뜬 그의 부인은 후에 시집 '접시꽃 당신'의 주인공이 됐다. 청주 흥업백화점 뒷골목 2층에 있던 그 커피숍은 창문이 전혀 없어 가끔 전시회도 열렸다. 친구의 그림 전시회가 끝나고 인근 식당에서 뒤풀이를 했을 때 당시 교사였던 도 시인도 참석했다. 별로 말수도 없이 점잖았지만 시인으로서 타고난 감수성과 詩에 대한 열정은 흘러 넘쳤다. 그는 기억할지 모르지만 1980년대 초반, 당시 시인으로서 무명이었던 그가 충북예총회관에서 열린 시집(고드미 마을에서) 출간기념회에 문의에서 농사를 짓던 그의 부친이 참석해 격려의 말을 했던 것이 눈에 선하다.

그 후 30년이 훌쩍 넘어 정치인이 된 도 의원이 4년전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킨적이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그의 작품을 교과서에서 제외할 것을 출판사에 권고했기 때문이다. 평가원은 여론의 집중타를 맞았다. 당시 민주통합당은 물론 진보·보수를 망라한 문학단체, 이문열, 안도현 같은 저명한 작가, 심지어 조중동과 같은 보수언론으로 부터도 비판을 받았다.

충주출신 신경림과 함께 충북을 대표하는 시인인 도종환은 수 많은 독자를 거느린 스타시인이기도 하다. 식당에 가면 사인요청도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그의 시는 '현실 비평과 서정성, 대중성, 공동체 연대 정신을 골고루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2002년 이후 교과서에 실렸다. 이와 관련, 도 의원은 국회에서 신상발언을 하는 도중 대형모니터에 詩 '흔들리며 피는꽃'을 올려 도하 각 신문 정치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결국 평가원은 여론의 비난에 굴복했다. 중앙선관위원회에 질의한 결과 문제없다는 답변에 도 의원의 시를 교과서에 그대로 싣기로 한 것이다. 이 사건은 시인이자 정치인 도종환의 이미지를 새롭게 각인시켰다.

도종환 의원이 최근 노영민 의원의 불출마선언으로 자리가 빈 청주흥덕을에 출마선언을 했다. 그가 진정한 정치의 세계에 뛰어든 것이다. 같은 국회의원이라도 비례대표와 선출직은 천지차이다. 비례대표는 1회성이지만 선출직은 유권자의 지지만 받는다면 얼마든지 다선에 도전할 수 있다. 40대에 자율신경실조증에 걸려 교사직에서 물러난 뒤 보은 산골짜기에서 10년간 요양하다가 4년 전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으로 위촉된 것이 계기가 돼 문화계인사로 비례대표가 됐지만 이젠 전업시인을 청산하고 직업정치인으로 변신하겠다는 것이다.

명망 있는 시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사례가 처음은 아니다. 시집 '겨울공화국'으로 유명한 저항시인 양성우도 1990년대 김대중 전대통령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해 국회의원(서울 양천)으로 활동했다. '꽃'으로 유명한 시인 김춘수도 영남대학교 교수 시절인 1981년 11대 국회의원(민정당)을 지냈다.

도종환 의원은 지역구 의원이 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당내 경선이나 본선경쟁력이 약하기 때문이 아니다. '도종환'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 이름 자체가 갖는 무게감도 만만치 않다. 문제는 현실정치가 녹록치 않다는 점이다. 당락을 떠나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것은 험난한 길이다. 정치적인 이념이라는 것이 그렇게 단선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때론 자신의 뜻에 반해 계파의 이익을 쫓아가야 한다. 정치현장은 '정치공학'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모순과 정략, 권모술수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곳이다. 하지만 시인은 다르다. 모든 예술가는 자유로운 감수성을 지녔지만 시인은 특히 모든 가치로 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이다. 시인을 화가, 작곡가, 소설가처럼 '詩家(시가)'라고 부르지 않고 '시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 때문에 그의 말대로 "시인이 정치에 들어가면 최소한 중상이거나 사망"이라는 말을 듣는다. 전두환 전대통령이 창당한 민정당 의원이라는 이력은 김춘수에게 오랫동안 흠이 됐다. 김춘수는 훗날 "고사했음에도 대학교수로 잘있던 날 억지로 끌어냈다"고 탄식했다. 양성우는 야당의 '보스정치'에 실망해 정치를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도종환은 4년 전 공초문학상 시상식에서 "공초처럼 구도자적인 자세로 세속에 물들지 않고 초월적으로 살아가려고 했는데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시 담쟁이에서 '저것은 벽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 그 때 / 담쟁이는 말 없이 그 벽을 오른다'고 노래했다.

도종환은 과연 현실정치의 벽을 타고 넘어 담쟁이처럼 자신의 정치적인 꿈과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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