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지북동 약국댁 손자 김동수 전 차관

충북 청주에서 대략 4km, 10리 조금 더 떨어진 시골마을. 지금은 청주 상당구 지북동이지만, 예전에는 청원군 남일면 지북리로 불렸다. 마을 앞에 있는 저수지 북쪽에 위치했다고해서 지북(池北)이라는 이름을 얻은 지북 마을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아늑한 곳이다.

고려시대 청주 출신 청년장군 경대승. 청주 경씨의 시원지인 지북 마을은 마지막 정보통신부 차관을 지낸 김동수(59) 한국디지털케이블연구원장의 고향이기도 하다. 충북의 '인재'로 어린 시절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공직사회 정상에 오른 뒤 이제 연구원장으로 인생 2막을 시작한 그의 숨겨진 이야기가 궁금했다. / 편집자

청주 지북동 약국댁 손자 김동수 전 차관.

[중부매일 김성호 기자] # 내가 아끼고 아낀 '어머니' 이야기

온화하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 그를 잠시지만 지켜본 기자는 뭔가 느낌이 오는 듯 했다.

그는 고향 충북의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금세 입가에 미소가 번졌고, 누구나 그럴법한 '어머니' 얘기에는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어릴적 뒷동산에 있는 고려시대 호부상서 벼슬을 한 청주 경씨 선영에서 뛰놀던 기억이 눈앞에 선합니다. 하하"

그는 어리시절 '약국댁' 손자로 불렸다.

"할아버지께서 한의원을 하셨는데 이 때문에 동네에서는 우리 집을 '약국댁'이라고 불렀어요. 할아버지는 세 살 무렵 돌아가셔서 기억이 거의 없지만요. 한약재를 넣어두는 서랍이 많은 약장이나 봉지에 싸인 한약재들은 내가 클 때까지 마루의 대들보나 사랑방 귀퉁이에 걸려 있었죠"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의 가족제도가 대부분 그랬듯 그의 집 역시 대가족이었다. 할머니와 부모님, 고모, 그리고 2년 터울의 8남매가 한 집, 한 지붕 밑에서 아옹다옹,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살았다.

"지금 생각해도 … 하하하. 할머니와 고모, 누나들은 안방에, 부모님과 나, 그리고 여동생, 그 아래 남동생 셋은 사랑방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자던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잠자기 전 이불 하나를 덮고 있다가 서로 끌어당기며 놀던 기억, 장난감이 없어도 우린 그때 정말 행복했었던 것 같아요"

그도 그럴 것이 가족의 정, 가족간 사랑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터다. 행복 그 자체인 것.

그는 한참을 고향 얘기에 빠지더니 가슴에 담아 두었던 '어머니'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내가 아끼고 아낀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어머니 이야기죠. 누구나 그렇겠지만 어머니는 곁에 있어만 주셔도 힘이 되는 존재잖아요. 힘들고 지쳤을 때 '엄마!' 라고 부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죠. 이런 존재인 어머니가 요즘은 많이 늙으셔서 가슴이 무척 아프네요. 오래 오래 내 곁에서 힘이 되어 주셨으면 좋겠는데 … "

그의 눈가는 순간 뜨거워 졌다.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한 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

"공무원인 아버지는 농사를 돌볼 형편이 아니었어요. 때문에 시어른 모시고 아이들 키우는 일과 집안일은 물론이고 농사일까지 모든 일은 어머니 몫이었죠. 내 기억에 어머니는 언제나 일을 하셨어요. 생활력이 무척 강하셨고, 억척스럽게 일을 하셨는데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이유는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서였지않았나 싶어요"

몸의 한계를 넘어설 만큼의 고생을 많이 하셨다는 그의 어머니. 그래서 그런지 어린 시절 기억하는 그의 어머니는 몸이 항상 안 좋으셨다고.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특히 몸이 안 좋으셨던 것으로 기억해요. 온 몸이 붓고 잠자리에서도 내내 신음소리를 흘리시는 어머니를 보며 나는 어린 마음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건 아닌지 무척 가슴을 졸였죠. 옛 어른들이 그랬듯 우리 어머니 역시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좀처럼 없었어요. 하지만 고향의 모습을 닮은 푸근한 눈길만으로도 어머니의 속내를 읽어내는 것이 우리네 정서 아닌가 해요. 줄줄이 누워 있는 자식들을 보며 흐뭇해하시던 어머니와 아버지의의 품이 있었기에 우리 8남매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죠"

좋아하는 것이라며 철마다 산나물을 뜯어 말리시고 도토리를 주어 묵을 쑤시던 어머니. 그의 어머니는 이제 서울 나들이도 힘들어 하신단다.

"어머니가 항상 고맙고, 항상 곁에 있어드리고 싶은 마음만 남아 있어요"

청주 지북동 약국댁 손자 김동수 전 차관.

# 어려서부터 꿈꿔온 공직자의 길

그는 국가를 위해 일해보고 싶은 생각을 어려서부터 했다고 했다. 선친이 산림청 공직자(도 사방관리소 공무원)로 일한 것이 국가공무원으로서 국가에 일임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을 들게 했다는 것.

"국가를 위해 가장 창조적으로 일할 수 있는 영역이 국가 공무원이라고 생각했어요. 국가를 변화시키고 내 주변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이고도 창의적인 직업, 공무원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통해 입문하게 됐죠"

공직생활내내 정신적 기반은 고향 청주였다고 강조한 그.

"정보통신부에서 정보통신 관련 국가정책을 관장하면서도 정보화시대는 항상 청주지역이 선도하고 성장하기를 바랐어요. 적극 지원도 했죠. 청주는 공직생활내내 정신적 기반이였어요"

실제, 그는 정통부 차관 시절 충북도의 정보화 사업, 특히 농촌지역 초고속통신망 구축사업에 힘을 실어 줬다. 덕분에 충북도는 가장 단시간 농촌지역에 초고속통신망을 구축할 수 있었고, 오송과 오창, 옥산 지역에도 정보화 인프라를 조속히 구축할 수 있었다.

공직생활, 나아가 그의 인생에는 두 가지 큰 원칙이 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원칙이 세워지면 따른다'가 그 것. 그는 원칙이 세워지면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그 원칙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KT 민영화 당시 1년여간 노조원들의 강경 불법투쟁에 굴하지 않고 정책을 위해, 그리고 국민의 소비자 주권확보를 위해 체신부를 점령하고 농성을 벌이는 상황을 정면으로 돌파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는 고향 발전을 위한 청사진 제시에도 시간가는 줄 몰랐다.

"청주를 중심으로한 충북도는 청정함이 생명인 도시잖아요. 행정도시와 대전시, 그리고 북쪽으로는 경기 경제권과 인접해 있는데, 이런 소비도시들의 청정먹거리 및 서비스를 공급해 줄 수 있는 배후 도시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면 경제성장 및 일자리 창출이라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봐요"

세상일은 모두 사람이 한다. 따라서 '인재 키우기'는 지역의 큰 숙제라는데 그와 기자는 공감했다.

"충북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적지 않게 배출됐잖아요. 지역 정치인들 역시 중앙 정치무대에서의 역할이 강화되고 있는 게 현실이고요. 이는 분명 우리 충북발전에 청신호임이 확실하다고 봐요. 이러한 인적 네트워크의 활용이 충북발전에 중요한 자산인데 이에 대한 부분이 많이 부족한 듯해요. 지역인재들이 성장하고, 이들이 충북발전에 기여 할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전에 차근차근 인재들을 발굴해 키우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고요"

요즘 충청인, 나아가 국민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게 있다. '반기문 대망론'이 그 것. 그도 '좋은 일'이라며 크게 반색했다.

"대한민국의 중심 충북에서 큰 인물이 나오고 중심적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예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님이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균형적 국정운영을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해주신다면 충북의 축복이자 우리나라 전체의 축복이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님은 그분의 외교통상부 고위간부 시절 충북출신 고위공무원 모임을 통해 뵐 기회가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공직자로, 그리고 지역선배로서 당시 반 총장님을 많이 흠모했어요"

그는 현실 정치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정치는 국민을 위한 것, 그리고 국민을 위해서는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손해를 보는 결정도 해야하는 겁니다. 정치 얘기는 그만이요. 시간이 많이 지났어요. 하하하" 김성호 /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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