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청주문화재단 총괄코디네이터

얼었던 대지가 몸을 풀더니 꽃들도 하나씩 기지개를 편다. 언어로 다 말할 수 없는 생명의 신비를 꽃대의 솟음으로, 잎들의 열림으로, 불멸의 빛과 향기로 내게 다가온다.

그리고 알 듯 모를 듯 속삭인다. "생(生)은 하느님이 주신 명령(命令), 그래서 생명(生命)"이라고. 그날 저녁 영화의 엔딩자막이 끝나고 환한 불빛으로 가득한 영화관에서 한참이나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고 눈물을 토했다. "이런 시대에 태어나 시인으로 살고자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다"며 오열하는 윤동주 시인 때문이다.

조국을 잃고 말과 글과 생각마저도 자유롭지 못한 시대의 아픔을 생각하면 지금 우리는 생각과 말과 행동 모두가 사치스럽다. 조국이 안중에 있기는 한 것인지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지금 우리는 영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시대의 아픔을 엿보고 과거를 재해석하며 사랑을 노래한다. 전쟁과 평화와 종교와 욕망의 온갖 것들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때로는 오만과 편견으로 얼룩진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기도 하며 성찰과 치유와 통합의 마력도 있다.

영화는 꿈도 아니라고 현실도 아니지만 꿈과 현실을 구원해주며 미처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삶의 향기 몇 점 가슴속에 안겨주지 않던가.

영화나 드라마는 이야기 소재가 중요하다. 스토리텔링이 문화산업이 되는 시대인 것이다. 한 사람의 일생은 곧 하나의 박물관이요, 한 편의 영화이자 드라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을 가슴 뛰게 할 스토리텔링은 없는지 두리번거려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일대기는 아픔을 기념하는 최고의 콘텐츠다. 조국을 위해 국경을 넘나드는 파란의 삶과 여순감옥에서의 죽음은 '동주'를 능가하는 한 편의 영화요 드라마다.

우리 동네 최고의 스토리텔링은 담배공장이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이곳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희망을 빚어왔던 곳이다. 담배공장 사람들의 사랑과 아픔의 숨은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다. 잊혀져가고 사라져가는 대농방적의 역사도 주목해야 한다.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여학생들이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이곳으로 달려와 낮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야학에서 공부했으며 동산위에 있던 교회에서 눈물로 기도하며 아픔을 견뎌야 했다. 그녀들의 사랑과 꿈은 영화로도, 드라마로도 부족함이 없다.

운보 김기창의 삶도 한 편의 영화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운보는 당신의 어머니와 부인 우향 박래현 등의 여인이 있었기 때문에 동양화의 대가로 기록될 수 있었다. 시련 없이 위대한 예술은 탄생되지 않는다. 그는 말 대신 붓끝으로 세상과 이야기 하면서 수많은 역작을 만들어 냈으니 '미인도', '취화선'을 능가할 콘텐츠가 될 것이다.

세종대왕 초정행궁 이야기도 최고의 스토리텔링 콘텐츠가 아니던가. 약수로 아픔을 치료하고 한글을 세자에게 가르치며 양로연을 베풀었다. 경호대장이 급사하고 극심한 가뭄을 이길 묘안을 짜내고 청주향교에 책을 하사하는 등 조선의 르네상스를 실천했던 곳이다.

옥화구곡은 신화와 전설이 살아있는 곳이니 이 또는 스토리텔링으로 적격이다. 일신여고 주변의 양관을 비롯해 근대문화유산을 특화한 이야기산업은 관광자원으로 발전할 수 최고의 상품이다. 청주 명암동에서 출토된 제숙공처 젓가락은 국보급 이야기산업이다. 제숙공의 부인이 일찍 죽은 아들의 무덤에 젓가락, 먹, 동전을 묻었는데 젓가락은 죽어서도 굶지 말라는 의미가 있으며, 먹과 동전은 죽어서도 공부하고 부자 되라는 어머니의 애절함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월령체가인 고려가요 '동동'에 "12월 분디나무로 깎은 젓가락"이 나오는데 분디나무는 바로 초정약수의 초(椒)인 산초나무가 아니던가. 이처럼 우리의 삶은 신화를 품고 있으며 생명문화를 담고 있다.

최고의 스토리텔링, 이야기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고 있으니 춤과 노래와 영화와 드라마와 다큐와 축제와 공공미술 등 맑고 향기로운 도시발전의 밑거름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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