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총괄코디네이터

얼었던 대지가 기지개를 펴더니 만화방창 꽃들의 낙원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사람들도 산으로 들로 나가 꽃의 잔치를 즐기며 생명의 대합창을 노래한다. 새들의 수다는 정겹고 나비들도 봄햇살을 품으며 날개짓을 시작했다. 무심하기만 했던 구름까지 맑고 향기롭다.

이처럼 4월은 생명을 찬미하고 생명을 노래하며 생명의 가치를 온 몸으로 호흡한다. 울긋불긋 꽃밭에 서면 굳어버릴 것 같은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하고 가슴이 떨려오지 않던가. 그 설렘으로 온 세상을 사랑하며 살고 싶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잔인하게도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몸부림치고 있다. 정치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4월 총선이 끝나면 내년에는 대통령선거가 있고 후년에는 지방자치 선거가 있으니 당분간은 선거라는 미명하에 온 나라가 번잡할 것 같다.

자연은 이처럼 엄연한데 인간의 마음만 정처없고 욕망으로 가득하니 꽃들이 지기 전에 나는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와 있는지, 어떻게 새로운 미래를 열 것인지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사람이든 도시든 매력적인 콘텐츠가 필요하다. 사람에게는 말씨, 솜씨, 맵씨를 통해 자신만의 가치를 발산하기 위해 힘쓴다. 도시는 공간과 디자인과 문화의 속살을 통해 특화된 매력을 선보인다. 우리 고유의 삶과 멋을 상품화하고 브랜드화하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 이 모든 것이 매력자본이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작금의 정치판 앞에서 냉소적인 시선과 실망감을 감추지 않는다. 이 나라가 희망이 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정치는 편가르기와 불신과 갈등으로 얼룩져 있다. 궁핍한 시대, 어려운 시대에 희망과 용기를 주고 위안이 되어야 할 정치는 어디에 있는지 허탈감에 심신이 피곤할 뿐이다.

매력정치를 위한 필수요건이 무엇일까. 우선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는 마음과 행동, 컴패션(Compassion)이다. 컴패션은 셈족어로 라흐민이라고 하고, 라흐민은 어머니의 자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헴(rehem)에서 유래했다. 오염되지 않은 태초의 마음, 어머니 같은 사랑과 배려의 미덕이야말로 진정한 컴패션이 아닐까.

창조적인 생각과 문화적인 시선도 중요하다.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끝없이 창조적 진화의 궤적을 밟아왔음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지식과 지혜를 위해 탐구하고 도전과 혁신의 모델을 만들며 글로벌 환경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전략적 사고와 실천이 인류 문명의 노둣돌이 되어왔다. 창조경제, 문화융성이 시대의 화두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으니 지도자는 경직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컨버전스(Convergence), 컨센서스(Consensus)를 통해 소통과 화합의 가치를 만들어 가야 하는데 창조적이고 문화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때 비로소 알곡진 결실로 이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지도자는 가난한 이들의 외침과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치인들의 재산공개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욕망덩어리다. 말로는 머슴을 자청하고 지역발전의 심부름꾼을 외치지만 권력에 대한 욕망, 자본에 대한 욕망이 누구보다 강렬하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뻔한 거짓말'이라며 정치에 대한 실망과 불신을 갖는 것이다.

사랑이란 사물이 가진 고유한 빛을 향해 마음을 열어두는 것이다. 그 빛을 어루만지고 포옹하며 더 큰 길을 향해 손을 내미는 것이다. 거친 해일이 밀려와도, 북풍한설이 몰아쳐도, 돌부리에 넘어져도 일어나 함께 손잡고 가던 길 마저 가는 것이다. 이기심과 결별하고, 거짓과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고, 조금 더 가난하고 조금 더 배고파도 양보하며 배려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이란 세상의 모든 존재의 빛이 되는 것이다.

정치인들에게도 사랑의 빛이 깃들면 좋겠다.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고 이웃에 봉사하며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하는 사람, 나눔과 배려와 혁신의 가치를 실천하면 좋겠다. 나의 한 표가 헛되지 않았음을 증거 할 때, 그 두근거림의 발걸음이 값진 결실로 이어질 때 진정한 민주국가의 꽃이 피는 것이다. 매력자본, 매력정치의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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