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정봉수 변호사

2140년 4월 13일 수요일 아침이 밝았다. 앞으로 4년 동안 K국의 입법과 예산을 관리할 입법AI를 선정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날이다.

국가기관 중 국가안보위원회와 함께 유이하게 인간만으로 구성된 선정관리위원회가 국민에게 보낸 메일에는 AI 개발 업체인 New World사, The Democracy사, M&G사, 그리고 새로이 이 업계에 뛰어든 신흥 IT회사인 Only Nation사가 보낸 선정 제안서가 있었다.

국가정책집행을 주도하는 행정AI로 3년 전에 선정된 New World사는 계약기간 5년 중 남은 2년 동안 국정 서비스하는데 유기적 효율성을 위해서 자사의 입법AI가 반드시 선정되어야 한다고 읍소한다.

The Democracy사는 지난 8년간 행정과 입법을 주도한 New World사의 경제서비스 실패와 정치서비스가 패권화되고 있음을 비판하고 희망이 사라진 사회분위기를 확 바꾸기 위해서는 The Democracy사의 입법AI의 선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국적 회사인 M&G사는 K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순혈주의는 타파되어야하며, K국이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고 나아가 열강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국제정치, 국제경제서비스에 특화된 M&G사의 입법AI가 선정되어야 한다고 선전하고 있다. 새롭게 입법AI시장에 진출한 Only Nation사는 오로지 국민만을 바라보는 입법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 입법AI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New World사의 서비스 실패와 The Democracy사가 입법서비스 능력이 없음을 싸잡아 비판하고 있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정신은 200년 가까이 이어온 K국의 국가원리로 여전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다만, 입법, 사법, 행정은 2140년 오늘에 와서는 권력이 아닌 서비스 형태로 변화하였고, 국민의 권리를 지키는 대리역을 사람이 아닌 AI로 대체한 것은 40년 전의 일이었다.

당시 권력을 입법, 행정, 사법으로 3분하고, 이들을 견제와 균형의 원리(checks and balances)로 상호 제어하는 원리를 권력의 개념이 아닌 서비스의 개념으로 바꾸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내전에 이를 것 같은 견해 대립이 있었다. 그렇지만 결국은 합리적인 국민 합의가 이루어졌고, 또한 권력을 대리하는 존재도 사람에서 AI로 바뀌면서 국민의 권력을 위임받아 권력 위의 권력으로 군림했던 사람들은 물러가고, 그 군림은 서비스로 전환 되었다.

이런 결과는 과학의 발전이 주는 열매였으나, 발전 방향의 순기능은 종교, 철학, 법학을 과학발전에 걸맞게 선도한 사람들의 작품이었다. 그 중 백미(白眉)는 AI와 관련된 기본법의 제정이었다. 단 3조로 구성된 AI기본법은 이후 인간과 AI사이의 관계를 정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조> AI는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 또한 위험을 방관함으로써 사람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제2조> 제1조에 위반하지 않는 한, AI는 사람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제3조> AI는 제1조 및 제2조에 위반하지 않는 한,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한다.(영화 "I, Robot"중에서 인용)

봄바람이 살랑 부는, 벚꽃과 개나리가 만개한, 화창한 4월 어느 날 SF소설 같은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2016년 4월 13일은 앞으로 4년 동안 대한민국의 입법권과 예산을 담당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AI관련기술의 발전으로 대체가능성이 높은 직업군들 중 앞자리에 정치가가 속하지 않길 바라며, 정치를 창조적 예술로 승화해낼 수 있는 제20대 국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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