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칼럼] 임정기

임정기 편집국장

민심은 매서웠다.

유권자들은 4·13 총선을 통해 오만한 정부와 여당을 심판했다. 새누리당은 122석을 얻는데 그쳤다. 참담한 패배는 원내 1당의 지위를 123석을 얻은 더불어민주당에게 내줬다. 국민의당을 창당한 안철수 대표는 38석을 얻어 원내에서 캐스팅보트를 쥐었다.

박근혜대통령은 임기말 국정을 이끌 동력을 크게 상실했다. 민심의 준엄함은 이른바 대권 잠룡들 조차 추풍낙엽처럼 휩쓸었다. 새누리당을 이끌던 김무성 대표는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 사퇴를 선언하고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김문수 전 경기지사도 낙마했다. 여의도 원내 진출에 실패한 그들은 잠룡으로서의 지위가 실추됐다. 아니 초라한 모습은 후일을 도모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여권 잠룡들의 증발이다.

그런가 하면 더민주당은 문재인 전 대표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간의 동거가 불안불안 하다. 조명을 받는 인물이 있다. 대구(수성갑)에서 지역주의란 거대한 벽을 깨고 12대 총선이후 정통 야당의원으로서 31년 만에 당선된 김부겸의원이다. 대구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자 고향이다. 또 종로의 정세균 전 대표·경기 김포의 김두관 전 장관도 입성했다. 그러나 웬지 이번 총선에서 원내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의 분위기 역시 썩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서울과 경기 인천 그리고 충청에서 선전했지만 전통적 지지기반인 호남을 잃었다. 제1 야당의 지지를 받지 못한 문재인 전 대표의 차기 대권행보는 그래서 무겁다. 호남의 지지를 얻지 못한 것은 수도권 호남인들의 지지도 받기 힘들다는 반증이다. 특히 광주 유권자들은 친노무현계에 대한 반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대신 그자리를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이 파고 들었다. 광주 전남북을 장악한 그들에게 수도권 유권자들은 정당표를 보탰다.

그러나 국민의당 역시 아직 몸집을 불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호남에서의 과분한 지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안철수 대표는 정작 수도권에서 자신의 지역구와 단 2곳에서만 승리했다. 충청 강원 등 중부권에서는 아예 국민의당은 존재감마저 찾기 힘들다. 이 같이 국민이 정치지형을 절묘하게 황금분할해준 것은 독단 독주 불통의 정치가 아닌 덧셈의 협치를 하라는 준엄한 명령이다.

충청권 민심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 자민련이나 선진당 처럼 충청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이 없이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정부 여당을 호되게 심판했다. 특히 충북은 어떤 지역인가. 옥천은 박근혜대통령의 어머니인 고 육영수 여사의 친정이 있는 외가동네이다. 지난 2014년 7월1일에 치러진 지방선거 당시 '충북의 딸'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을 잘 이끌 수 있게 힘을 보태달라는 새누리당의 막판 호소는 도지사 선거판을 흔들었다.

당시 새누리당 소속의 윤진식 후보와 더민주 소속의 이시종 지사는 새벽까지 엎치락 뒤치락 하며 손에 땀을 쥐는 개표 끝에 간신히 이시종 후보가 당선됐다. 그러나 이번 충청 총선은 달랐다. 세종특별자치시는 공주출신의 박종준 전 청와대 경호차장이 공천을 받아 새누리당 후보로 나섰으나 패했다. 그것도 더민주에서 컷오프 돼 무소속으로 나온 이해찬 후보에게 진것이다.

또 총 4개의 선거구가 있는 통합청주시는 오제세(서원구)·변재일(청원구)·도종환(흥덕구)의원 등 3석을 더민주가 차지했다. 청주권에서 유일하게 당선된 새누리당 정우택(상당구)후보는 되레 돋보인다. 그 역시 개표가 시작되자 예상과 달리 더민주 한범덕 후보에세 맹추격을 당했다. 대전은 또 어떤가. 모두 7개의 지역구 중 박병석(서구갑)·박범계(서구을)·조승래(유성갑)·이상민(유성을)후보 등 4명이 차지했다.

논산·계룡·금산에선 이인제최고마저 낙마하는 이변이 연출됐다. 충청권 총 27석 중 새누리당이 14석, 더민주 12석, 무소속이 1석을 각각 나눠가졌다. 이는 성난 민심의 정부 여당에 대한 이반이다. 공천 과정에서 새누리당 친박과 비박간의 갈등을 본 유권자들은 냉정했다.

이번 총선은 유권자들이 만든 정계개편이다. 내달 제20대 국회가 개원되면 과반을 확보 못한 여야는 어느당이든 마음대로 권력을 독점하는 정치를 펼 수 없다. 그런데 벌써 새누리당은 무소속 국회의원들의 입당과 복당을 추진한다고 한다.

유권자에 대한 예의는 안중에도 없다. 총선이 끝나자마자 3당과 유력잠룡들은 대선 길목에서 패권 다툼에 급속히 빨려들어갈 태세이다. 민심은 변한다. 정치권은 이성을 되찾고 협치를 통해 국민이 원하는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챙겨야 한다. 한계에 다다른 소선거구제와 대통령중심 단임제 등 권력구조 문제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민주체제도 검토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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