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청주시 문화재단 총괄코디네이터

중국 닝보시 방문은 첫날부터 방랑자의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 혹자는 닝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도시에 무슨 얘깃거리가 있을까 냉소적일 수 있지만 중국이 얼마나 무섭게 도시발전을 일구고 있는지, 혁신과 창조의 가치를 통해 도시마다 각각의 문화를 특화하고 있는지, 개성과 매력 넘치는 도시를 위해 대중의 협력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 확인하는 롤 모델이다.

건강한 도시, 미래지향적인 도시는 우리 삶의 선함과 아름다움과 진실됨을 공간속에 담는다. 갈등과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에 젖어있는 도시는 희망이 없다. 감성과 사랑, 도전과 창조의 가치를 위해 끝없이 도파민을 만드는 도시가 진정한 21세기형 도시일 것이다. 닝보 방문길에서는 이 모든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으니 놀라움과 즐거움과 두려움에 밤잠을 설쳐야 했다.

놀라움은 숲과 공원의 도시, 강과 호수의 도시, 초고층 빌딩과 멀티미디어의 도시로 급성장하는 균형감에서 찾을 수 있다. 즐거움이란 풍요로운 음식, 시민들의 문화에 대한 참여와 애정, 깨끗한 거리와 가득 찬 볼거리, 사람들의 역사적 공간과 인문학적 가치의 보존 및 확장 등이다. 그런데 왜 두려움이 밀려올까.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추진력과 일관된 행정 시스템이 있기에 가능했다. 우리가 현실에 안주하거나 빈둥거리고 있을 때 주변국가와 세계의 도시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가치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닝보시는 책과 음악과 영화의 도시다. 천일각이라는 곳은 450년 전에 지어진 대규모 정원형 장서각인데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중국을 대표하는 인문학자를 수백 명 양성하고 노벨과학상까지 배출했으니 그 자긍심을 말해 무엇하랴. 이 도시는 신석기 시대부터 악기를 만들어 왔으며 당송시대에는 청자를 활용한 다양한 악기와 음악이 융성했다며 음악도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와함께 수많은 배우를 배출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활용한 중국의 다양한 영화를 촬영하는 등 도시 이미지를 굳건히 하고 있다.

무형문화유산을 경제발전과 연계시키려는 그들의 노력도 돋보인다. 수백 년 전부터 아시아 최대 규모의 해상무역 도시의 명성을 이어 온 닝보시는 인근의 취안저우, 칭다오 등과 함께 해상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겠다는 포부는 중국 정부가 취안저우, 칭다오, 닝보로 이어지는 동아시아문화도시 선정과정부터 치밀한 전략의 단면이다.

닝보시 방문 첫날은 2014, 2015, 2016년 동아시아문화도시 관계자가 한 자리에 모여서 우리의 미래와 비전을 함께 토론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한국과 일본은 도시의 역사, 문화, 관광자원을 홍보하는데 주력했지만 중국은 참여와 협력, 창조와 융합, 정부와 대중의 차별화된 전략으로 세계로, 미래로 그 가치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음을 부각시켰다.

중국 대륙의 놀라운 변화가 도시의 사람들에게 예술의 향연과 영적인 성숙으로 이어지고 있음에 감동했다. 지난해 청주시와 함께 문화도시의 우정을 다져 온 칭다오는 전통과 현대, 해양과 내륙, 문화와 문명의 조화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열고 있음을 확인하지 않았던가. 2014년을 대표하는 중국의 동아시아문화도시 취안저우는 이번 기회에 도시 전체를 문화콘텐츠로 풍요롭게 구축하겠다는 마스터플랜과 함께 8천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자하고 있다.

닝보의 개막식과 무형문화유산 박람회는 그 형식과 내용 면에서 놀라움과 영감을 주었다.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에다 최첨단 홀로그램까지 만날 수 있는 혁신의 장이었다. 도자, 목칠, 섬유 등 장르별 동아시아문화도시 작가들의 대표작을 전시하고 시연하는 모습은 동아시아의 하나됨을 엿보는 공간이었다. 우리도 아름다운 춤과 장인들의 위대한 유산으로 화답했다. 낯선 길에서 그들의 삶이 빚어 낸 일상의 예기치 못한 풍경이 진한 감동으로 밀려온다.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창조의 길을 갈 것인가 고민케 한다. 새로운 미래를 위해 더 큰 성장통을 허락해야겠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