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호] 내과의사가 보는 의료와 사회

담도암이나 췌장암으로 담도가 좁아진 환자에게 생긴 담도협착을 치료하는 그림. 내시경을 통하여 얇은 유도철사(guidewire)를 암이 막고 있는 부위를 관통시키고 나서, 그 유도철사를 따라서 스텐트/튜브를 넣어 환자의 담즙이 장으로 배출되도록 하고 있다.

국민의 안전은 아주 중요합니다. 따라서 여러 의료장비에 대한 규제는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상식을 벗어나서 몇십년째 유지된다면, 정부가 이상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공산품으로 허가를 받은 컵이 수돗물을 마실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는데, 이후에 생수를 이 컵으로 마시면 불법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물론 말이 안되죠? 그래서 외국에서는 의료재료, 장비를 허가를 받은 주 목적(수돗물)이 아니어도, 이후에 부수적인 목적이나 장기(생수)를 마시는데 사용하여도 불법이 아니고, 환자에게 보험혜택을 줍니다.

그럼 한국은 그렇지 않은가 보네요? 예, 안 그렇습니다.

담도협착치료 내시경과 대장스텐트 두가지 시술에 사용되는 유도철사는 동일한 제품입니다. 그런데 처음 미국의 회사가 몇십년전에 개발할 때, 담도암·췌장암의 치료용으로 개발하여 미국에서 허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미국과 다른 나라들에서 같은 유도철사를 같은 내시경으로 넣어서 사용하는 의료장비이므로 위, 대장, 식도, 심지어 복강이나 흉강 등의 다른 장기에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고 합리적 판단을 하여 다른 장기의 협착이나 기구를 유도하여 넣는 곳에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만 '미국에서 담도암·췌장암'용으로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다른 장기인 식도, 위, 대장에는 사용을 허가하지 않고 있습니다.

식도암, 위암, 대장암으로 장이 막힌 환자의 장에 내시경을 이용하여 유도철사를 암이 막은 부위를 통과시키고 앞의 담도와 마찬가지로 스텐트를 넣는 그림.

그래서 대한민국의 의사들은 환자를 죽일 수는 없으니, 불법으로 가이드와이어를 구매하여 사용합니다. 그러니 이렇게 불법으로 사용하는 유도철사를 재활용이란 불법으로 다시 사용안할 수 있을까요?

의료산업화를 하여 국부를 창출하려면, 중소기업에서 의료장비로서 가이드와이어를 아무리 만들어봐야 뭐합니까?

이렇게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법이 존재하고 있는데요. 이건 의료기구만이 아닙니다. 약도 마찬가지입니다. 펜타닐이라고 진통·진정제인데, 환자들이 몸에 패치로도 붙이고, 아플 때 코에 뿌리는 스프레이도 집에서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대한민국에서는 정맥으로 주사할 경우에는 수술장의 전신마취와 중환자실의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환자에게만 허가사항으로 정해놨습니다. 이게 어떤 학술적 근거인지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내시경을 하고 배가 아픈 환자나 응급실에서도 간단한 진정을 해야하는 경우, 말기암환자들에게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약이 그리고 몇백원도 안하는 약이 국내에서 허가를 받지 못하고 불법으로 의사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허가사항을 변경하려면 임상시험 데이타를 제출하라고 합니다. 좋은 말입니다. 근데 수십년을 전세계에서 사용하고 교과서에 나오는 기구와 약을 가지고 지금와서 한국에서만 임상시험을 하는 것이 필요없는 실험이기 때문에 비윤리적인 것이며, 외국의 회사들은 한국의 이상한 법규정에 맞추느니 한국에 판매를 안하겠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시장이 그렇게 큰 것이 아니거든요. 결국 의사는 범법자가 되고, 환자는 피해를 보는 구조입니다.

법대로 진료하고 치료하며 살고 싶습니다.

/ http://blog.hani.co.kr/medicine/57638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