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발이 너무해」로 영화팬들을 사로잡았던 리즈 위더스푼은 지금 승승장구중이다. 맥 라이언, 줄리아 로버츠를 제치고 로맨틱 코미디계 히로인으로 등극하고 있는 것이다. 검은색 원피스를 맵시있게 차려입은 그녀만 홀로 서있는 포스터가 일찌감치 시사하듯, 「스위트 알라바마」(앤디 테난트 감독)는 「리즈 위더스푼을 위한, 리즈 위더스푼에 의한, 리즈 위더스푼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러니 모든 길은 리즈 위더스푼으로 통한다. 남편을 뿌리치고 단독 상경한 알라바마 촌아줌마 멜라니가 7년만에 뉴욕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성공했다고 해도 수긍이 간다, 그녀라면. 또 제2의 JFK를 꿈꾸는 백마탄 왕자님이 티파니 매장을 통째로 빌려 꿈같은 프로포즈를 한대도 부러울뿐이다, 그녀니까. 게다가 큼직한 다이아반지를 끼고 나타나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에게 여전히 그윽한 눈빛을 보내는 남편까지, 모든 것은 그녀를 빛내기 위해 설정된다.
 그런데 양 손에 떡을 쥔 멜라니의 행복한 고민에는 일련의 사회문화적 맥락이 살짝 가미된다. 그녀가 앤드류와 제이크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단순히 누구에게 더 이성애적으로 끌리느냐는 개별적이고 낭만적인 선택을 훌쩍 넘어선다. 유망한 정치인 아내와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성취가 보장된 뉴욕에서의 삶과, 첫사랑의 기억과 성장기 편린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마음의 고향에서의 삶이 극명하게 대조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따른다면 앤드류와 제이크는 도시 대 시골, 유랑지 대 고향, 경쟁 대 위로, 혹은 성공이라는 표상과 내면이라는 심층의 대비가 된다.
 「스위트 알라바마」는 이 대립구도를 끝까지 밀고 나감으로써 일종의 스릴마저 자아낸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멜라니가 이혼서류에 서명할 것인가의 양자택일을 긴장 속에 지켜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소수의 경악과 다수의 지지 속에 멜라니의 선택은 이루어지고, 그 후로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더라며 동화는 완성된다.
 자, 그렇다면 이 「남편 단일화」에 우뢰와 같은 박수로 화답해야 할까? 제대로 짝을 찾고 누구도 패배한 자가 없으니? 그런데 영 개운치가 않다. 물론 7년동안 고향도 부모님도 외면했을 만큼 치열하게 부대껴야 하는 뉴요커의 삶은 고단했을 것이다. 그러니 따뜻한 인정과 추억이 남아있는 익숙한 편안함에 마음이 기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전폭적으로 지지받고 싶었다면 앤드류로부터 제이크쪽으로 이동하는 멜라니 심경을 좀 더 설득력있게 그려냈어야 했다.
 뉴욕시장 아들 앤드류는 과거는 물론 현재의 흔들림에도 상관없이 멜라니의 전부를 수용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뭐 하나 탓할 게 없는 그가 왜 거부당해야 했을까? 제이크가 첫사랑이니까? 고향은 좋은 것이어서? 물론 정치인 아내로서의 삶이 알라바마에서의 진솔함보다야 어쩔 수 없이 가식적일 거라고 짐작할 수는 있다. 하지만 관객의 짐작과 성급한 일반화에만 기대 완성되는 동화는 아무래도 부실하다.
 고백하자면, 멜라니가 이혼서류를 들고 망설이는 그 순간 「빨리 사인 해! 새로운 삶에 도전하라구!」를 외쳤었다. 상처입고 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가지 않은 길을 가볼 필요가 있으니까. 게다가 멜라니는 몇번의 패배도 이겨낼 만큼 충분히 젊고 씩씩하지 않던가. /whereto@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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