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신라시대부터 시작된 역(驛)은 전국을 하나로 엮는 신경망과도 같았다. 일정한 거리마다 역을 두어 공문서의 전달, 관물(官物)의 운송, 관리들의 숙박 기능을 담당했던 것이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전국에는 5백40역이 있었고 수십개의 역을 한 도(道)로 하여 전국을 41개 도로 편성하였다. 각 도에는 찰방(察訪·종6품) 또는 역승(驛丞·종9품)을 두어 이를 관리케 했다.
 청주 일대는 율봉도(栗峯道)에서 이를 관장하고 율봉도에 소속된 역이 장양(長楊·진천), 태랑(台朗·진천), 율봉(栗峯·청주), 쌍수(雙樹), 덕유(德留·문의) 등 16개소에 이르렀다. 중심이 되는 율봉역은 신흥고 뒷편에 있는데 아직도 그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이러한 역은 근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기차역으로 점차 바뀌어 나갔다. 역 하면 대뜸 기차역을 떠올리나 그 근원은 마필(馬匹)을 갖춘 전통적 역에 있다.
 본사가 매년 벌이는 도지사기 마라톤대회는 영동에서 부터 단양에 이르는데 구간중 보은, 진천, 괴산 등지는 역이 없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함림역(含林驛)이 보은에 있었고 진천에는 장양, 태랑역이 있었으며 괴산에는 시화역(時化驛)이 있었다.
 충주 탑평리7층석탑을 일명 중앙탑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건각(健脚)에 관한 설화 한토막이 전해진다. 신라시대에 건각 두명을 선발하여 한명은 남쪽 끝에서 걷게하고 다른 한명은 북쪽 끝에서 걷게 하였다.
 그 결과 두 건각이 현재의 중앙탑에서 만났다고 한다. 나라에서는 바로 이곳이 한반도의 중심이 된다하여 큰 탑을 세웠는데 후세 사람들을 이를 기려 중앙탑이라 했다는 전설이다. 실제로 중앙탑 일대를 발굴한 결과 가람(절)배치 흔적이 없어 절과 관계없이 풍수학적으로 세운 비보탑(裨補塔)이 아니냐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조선말 이용익(李容翊)은 함경도 태생으로 장사에 특이한 수완을 발휘하였다. 물장수부터 시작한 그는 장삿속도 훤하였지만 특히 남다른 건각을 가졌다. 그는 함경도이건 경상도, 전라도이건 심부름을 시키면 보통사람들이 몇날 며칠 걸리는 여행길을 하루만에 돌파했다고 한다.
 축지법을 썼는지 남다른 마라톤 실력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건각과 뛰어난 셈법 머리 덕분에 황실의 재정을 관리하는 내장원의 책임자로 뽑혀 엄비(嚴妃)의 총애를 받았다.
 충북이 경부역전 5연패의 신화를 일궈냈다. 15명의 건각들이 부산~서울을 1위로 종주하며 충북의 위상을 한껏 드높인 것이다. 이번 우승은 주전선수의 부상 가운데 달성한 것이어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60년대 초반 3년패를 이룬후 30년만에 신화를 보태서 재현했다. 선수, 스탭진이 혼연일체가 된 노력의 결과다. 앞으려 서울~평양간 역전마라톤대회가 열리게 되면 그 대회 마저도 충북선수단이 석권하리라 믿는다. 중앙탑의 설화가 괜한 것이 아니다. lbm@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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