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총괄코디네이터

공간이 사라지면 역사도 사라지고 사랑도 사라진다. 오래된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그리운 것은 고향에 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 그 곳에 서면 오래된 미래가 끼쳐온다. 깊고 느림의 미학, 소소한 풍경에 젖다. 가없이 슬프고 신비하며 애틋한 삶의 여정을 품는다. 영적 성숙을 이루게 하는 보금자리다. 꽃처럼 나비처럼 바람처럼 햇살처럼 삶의 향기를 디자인하고 꿈을 담는 곳이다.

나는 여러 해에 걸쳐 우리 지역의 낡은 공간과 오래된 골목을 노래했다. 이미 세계의 주요 도시는 공간의 가치를 문화로 살찌우고 예술로 승화시켰으며 관광자원으로 특화하고 있다.

국내도 서울에서부터 군산, 전주, 대구, 부산, 통영 등 도시마다 고유의 삶과 멋을 가꾸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엄연한 현실 앞에서 머뭇거리거나 주저하면 안될 것이기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웅변하곤 했다.

올해는 대한성공회가 청주에서 선교를 시작한지 100주년을 맞는다. 1916년 조선성공회월보 1월호에는 청주의 동산리와 묵방리 등에서 선교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기록돼 있다.

영국인 선교사 올레 신부가 대성동 일원에서 가정예배를 보기 시작했고, 몇 해 지나서 세실 쿠퍼 주교가 수동의 언덕바지에 전통 한옥양식으로 성당을 짓게 됐다. 수동성당은 1985년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9호로 지정됐다. 수동성당이 갖는 의미는 여러모로 적지 않다. 우선 건축양식의 아름다움이다. 낮은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팔작지붕의 목조한옥으로 만들었다. 전통 한옥의 기법과 디자인에 서양식 감각이 함께 융합된 것으로 한국의 아름다운 성당 20선에 포함돼 있다. 보는 사람들마다 신비스러움과 엄숙함에 절로 마음이 숙연해진다.

수동성당이 위치한 공간의 특수성도 주목해야 한다. 동산위의 성당을 한 바퀴 돌아보자. 동쪽으로는 우암산이 시내를 굽어보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무심천이 흐르는 시내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남서쪽으로는 도청과 청주읍성이, 북서쪽으로는 시내 전경과 미호평야의 신비가 펼쳐져 있다. 바람과 햇살과 구름도 쉬어가는 곳이니 오가는 사람 모두 정처 없던 마음 부려놓고 시심에 젖는다. 청주의 3대 명당 중의 하나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풍광이 빼어나다.

이곳을 기점으로 주변에는 청주의 근대문화유산이 다채롭게 펼쳐져 있으며 낡고 오래된 골목의 풍경이 나그네를 반긴다. 옛 충북지사 관사, 청주향교, 도청, 청주읍성, 청주양관등 20여 개의 근대문화유산이 위치해 있고 청주만의 멋과 숨결과 향기로움 간직하고 있다. 이곳은 지난날의 아픔까지 품고 있기에 더욱 깊은 애정을 느낀다. 삶과 문화가 흐르는 곳, 낭만과 예술의 꽃이 피는 곳, 청주의 새로운 희망을 노래하는 곳으로 발전하기를 소망한다.

무엇보다도 100년이라는 짧지 않은 인고의 시간과 결코 간단치 않았을 선교의 여정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하다.

종교인에 대한 박해에서부터 하느님의 삶을 실천하기 위해 걸어 온 100년의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다. 누가 말했던가. 살아남은 것들은 저마다 하나씩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고. 그 여정을 스토리텔링으로, 문화콘텐츠로, 관광자원으로 특화하면 좋겠다.

문화지리적 관점에서 이곳은 아주 특별하다. 공간이 주는 특수성과 건축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가치를 생각할 때 불교의 탬플스테이처럼 카톨릭의 소울스테이를 특화할 것을 적극 추천한다. 이곳에서 영혼의 위로와 마음의 격려를 받고 스스로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주변의 공간 탐방과 문화적 양식을 얻는 것은 물론이고 도시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를 찾게 될 것이며 가슴 설레는 걷기 여행이 될 것이다. 기운이 맑고 깨끗한 곳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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