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오홍진 대신증권 본점부장

얼마 전 미국경제전문잡지인 포브스가 한국의 50대부자를 선정해 발표했다. 그런데 언론에선 일률적으로 한국에서 자수성가형 부자가 약 40% 정도로 예년에 비해 늘고 있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당연히 포브스의 분석 결과를 인용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도 없고, 이견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필자는 나름대로 50대부자들의 리스트를 보며 좀 다른 생각을 해 보았다. 이제 한국에서 부자의 순위가 급변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산업 사이클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예전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게임이나 유통 기업들이 50대부자로 많이 올라오고 있다.

이번에 눈에 확 들어오는 인물은 현대차 정몽구 회장을 제치고 4위에 랭크된 스마일게이트의 권혁빈 대표다. 그는 온라인 게임으로 중국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아마 권 대표를 처음 들어보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만큼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기에 충분히 상징성이 있다. 중국과 게임의 테마를 가지고 세계 굴지의 자동차회사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선하다.

그렇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상속형 부자가 많은 편이다. 세계적으로는 자수성가형 부자가 상속형 부자보다 약 7대 3의 비율로 많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가업을 승계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했다는 사실을 뒷받침 하고 있다. 또, 경쟁이 덜 심했다고 볼 수도 있고, 세계적인 경쟁에 덜 노출됐다고 볼 수도 있다. 반대로 신규진입 문턱이 높은 산업구조라고 할 수 있다. 부자들의 순위를 보며 문뜩 가요계가 연상되었다.

전통적인 부자는 가왕이라 일컫는 조용필이나 이미자 급이고, 신흥 부자들은 K-POP 아이돌 가수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왕의 존재는 절대적이고 지극하다. 한 시대를 주름잡았다. 그렇다고 현세를 풍미하지는 못한다. 지금은 자라나는 K-POP 아이돌 가수가 힘이고 대세다. 또, 그들은 기존의 가왕과는 다르게 세상을 해석하고 접근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50대부자들의 리스트 변화가 다른 때보다 더 신경이 쓰인 이유는, 지금이 격변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짧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이천 년대 초반에 IMF나 인터넷 열풍이 부의 지도를 확 바꾼 적이 있었다. 지금이 그때와 비견되는 시대라고 본다. 그만큼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지금은 가히 4차혁명이라 명명할 정도로 정보통신기술(ICT)이 세상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산업의 지도가 송두리째 바뀌고, 부자의 순위가 덩달아 급변하고 있다. 요즘은 4차 혁명에서 말하는 로봇이나 인공지능(AI)이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으면 도대체 명함을 못 내미는 세상이 되었다.

시대가 급변하다 보니 산업의 구조조정 문제는 늘 숙제다. 우리나라는 이미 좀비 기업이 수천 개에 이른다. 당장 화두로 떠도는 거대기업만 해도 몇 개가 있다.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뒤처지고 있는 기업들에 대해 새로운 발전을 위한 구조조정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많은 이해관계자의 셈법이 서로 달라서 이를 조정하는 정부 입장이 상당히 복잡하다.

구조조정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상시적이고 선제적이어야 한다. 지금과 같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등떠밀리기식 구조조정을 하다 보면, 부작용도 크다. 지난날 우리는 인위적인 구조조정 과정에서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각 이해당사자가 지혜로운 해결을 하길 기대한다. 부자들의 순위 변화를 보며 세상의 변화를 실감한다. 아니 부자들의 순위도 이미 변한 결과를 후행으로 반영하는 지표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또 다른 변화가 물밑에서는 끊임없이 지금도 진행된다고 봐야 한다. 벌써부터 앞으로 새롭게 만들어질 부의 지도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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