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실장·대기자

한때 청주시장을 지냈던 모 정치인은 소탈하고 청렴한 인물이다. 그가 현직시장 시절 주말에 열린 행사에 비서도 없이 홀로 나타났다. 행사가 끝나고 주차장에서 그를 기다린 것은 운전사가 딸린 시장 관용차가 아니라 볼품없이 낡은 개인승용차였다.

기자가 "주말에 행사도 많을 텐데 운전기사는 어디 갔느냐"는 고 묻자 그는 "휴일에는 내가 직접 차를 몰고 다녀도 된다"며 씩 웃고 떠났다. 오랫동안 잊혀 지지 않은 신선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 시장이 재직 시 청주시는 공무원 비리가 최고치에 달했다. 전국 뉴스를 탔던 간부공무원의 대형 뇌물스캔들도 발생했다. 조직 내에선 복지부동과 적당주의가 판을 쳤다.

나홀로 깨끗하고 열심히 뛴다고 공직사회가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다. 자치단체장의 리더십 부재는 조직을 망가트리고 도시발전에 역행한다.

지방자치가 시작된 이후 임기를 마친 다섯명의 청주시장에겐 공통점이 있다. 모두 단임이라는 점이다. 재선에 성공한 사람은 없다. 시민들은 민선 이후 김현수·나기정·한대수·남상우, 한범덕 전시장에 이르기까지 선거 때마다 다른 인물을 선택했다. 시민들의 표심이 유독 까다롭거나 새얼굴을 좋아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총선을 보면 꼭 그런것은 아니다.

오제세·변재일 의원은 청주에서 4선에 성공했다. 의정활동이 돋보인 것도 아닌데 그렇다. 정우택 의원도 재선가도를 달리고 있다. 노영민 전의원이 출마를 포기한 청주 흥덕을 제외하곤 모두 현직의 독무대였다. 이시종 충북지사도 청주시민들의 안정된 지지를 바탕으로 3선을 넘보고 있다.

이승훈 청주시장 / 중부매일DB

현역을 선호하는 투표성향이 청주시장만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시민들이 시장에게만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도 아니다. 정치적인 이유라고 볼 수도 없다. 시민들은 바람의 영향을 받긴 하지만 영호남처럼 꼭 정당을 보고 찍는 것도 아니다. 총선과 지방선거의 전혀 다른 선거양상은 연구대상이다.

초대 통합시장인 이승훈은 다음 지방선거에서 과연 단임 징크스를 깰 수 있을까. 그가 청주시장에 다시 도전할지는 모르지만 재선이 쉽지 않을 것이다. 시정운영능력이 시민들의 눈높이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자치단체장들은 오는 6월이면 임기의 반환점을 돈다.

축구로 말하면 전반전 종료 휘슬을 기다릴 시점이다. 이 시장은 전반기에 기대이하의 성적표를 받았다. 오랜 행정경험과 선거과정에서 보여준 돌파력은 그의 덕목이었다. 역대 민선시장 중 초대 김현수 전시장을 제외하고 그를 포함해 5명이 모두 부지사를 지낸 관료출신이지만 그는 상공부와 주미대사 상무관으로 일해 경륜도 풍부하고 글로벌한 시야도 갖고 있다.

하지만 통합시장으로서 막상 뚜껑을 열자 덕목을 찾기 힘들었다. 청주시를 보면 한범덕 전시장 시절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기시감이 든다는 얘기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조직 장악력이 미흡하고 공무원들이 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지 못했다. 또 소통과 소신이 부족하다. 물론 이 시장의 의지대로 하기 힘든 여건도 있다. 청주·청원이 통합되면서 양 자치단체 공무원 사이에 여전히 화학적인 결합이 이뤄지지 않았다.

일사 분란한 시스템을 만들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다. 무엇보다 논란이 됐던 오송역사 명칭, 청주시 새청사, 청주노인요양병원, 청주시심벌마크 논란은 시민들에게 실망을 주었다. 특히 취임 초부터 공직비리 근절을 공언했지만 공무원들의 갑질이 더 심해진 것은 이 시장의 리더십에 의문을 품게 한다.

이런 리더십이라면 결과는 뻔하다. 물론 아직은 전반전이다. 반전의 기회는 얼마든지 남았다. 청주시정이 바뀌려면 이 시장이 먼저 변해야 한다. 그럴려면 이시종 지사를 연구하라고 권하고 싶다. 선거불패는 운이 좋거나 우연히 이뤄진 것이 아니다. 이시종 리더십의 핵심은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인사다.

자신의 정책을 구현할 수 있는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하려면 연공서열을 떠나 능력중심의 '라인업'을 짜야한다. 보신주의와 복지부동, 철밥통은 공무원을 상징하는 말이다. 큰 잘못만 없으면 적당히 승진하면서 정년까지 가는 공직사회에 개혁과 혁신이 먹힐 리 없다. 청주시가 달라지려면 열심히 뛰는 공무원에게 승진기회를 주고 핵심부서에 배치해야 한다.

자질과 자격을 의심케 하는 공무원들은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또 일부지역과 특정집단의 탐욕에 휘둘리지 말고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한동안 저항도 거세고 뒷담화도 심할 것이다. 그래도 줄기차게 밀고나가다 보면 변화를 느낄 것이다.

시장이 휴일에 낡은 승용차를 직접 운전해 행사장에 가거나 새벽에 기상해 눈 치우러 간다고 조직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걸프전의 영웅 콜린 파월은 "리더십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일을 하게 하는 동기부여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장의 진짜과제는 현안해결이 아니라 사람과 조직을 변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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