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톡톡톡] "성년맞은 우리 딸! 인생의 따뜻한 나침반 삼았으면…"

[중부매일 김정하 기자] "엄마가 수빈이에게 주는 마음의 선물이야. 성년이 됨을 축하하며 성년이 되면 책임도 크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해…." / 수빈이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가

이정희(50·충북도청 복지정책과)씨는 성년의 날이었던 지난 16일 생후 6개월이었던 큰 딸 이수빈(19)양이 첫 번째 뒤집기를 하며 몸짓을 가눴던 날의 감격을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20년 째 쓴 일기장을 선물했다.

"자식을 가진 부모들이 누구나 같은 마음 이듯이 첫 딸을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 생각했어요. 나중에 기억에 남을 만한 선물을 하고 싶다는 생각 끝에 성년이 되기까지 일기를 써보자고 했었지요."

수빈이를 키우며 함께한 희로애락을 꼼꼼히 기록한 '일기'는 1998년 2월 무렵 시작돼 만 19세 성년의 날을 맞았던 지난 15일까지 이어졌다.

큰 딸 이수빈(사진 왼쪽) 양을 위해 20년 동안 일기를 써온 엄마 이정희(오른쪽)씨가 수빈 양의 성년 됨을 축하하기 위해 꽃다발과 함께 정성이 가득 담긴 일기장을 선물하며 활짝 웃고 있다. / 신동빈

일기에는 거실에 걸려있던 자명종이 무시로 소리를 냈던 '뻐꾸기' 울음소리를 매일 들었던 수빈이가 '뻐꾹~'이라는 소리를 처음으로 입밖에 냈던 일부터 초등학교 때 열린 백일장에서 처음 상을 받았을 때의 기쁨이 잔잔히 담겨있다. 사춘기 몸살로 대화를 거부하던 아이가 문을 걸어 잠근 채 버텨 처음으로 손찌검을 했던 가슴 아렸던 일과 대학에 입학한 후 술에 취해 혀 꼬부라진 말로 전화 통화 하다 함께 소리 내 웃고 말았던 일까지 한편의 드라마처럼 기록돼 있다.

# 1998년 2월 27일 우리딸 '뒤집기' 하던 날

"6개월이 지난 일요일 수빈이가 엎쳤다. 너무 신기해서 엄마는 어쩔 줄 몰랐지. 사람이 태어나면 이도 나고 다 할 줄 안다는 사실이 놀라움과 벅찬감정으로 가득했지. 사람이 태어나면 다 이렇게 커가는 것이겠지만 참 신기하다. 자식을 낳아서 키운다는 것이 이런 기분인가 보다."

이 씨는 나와 닮은 생명이 '응애'하며 우는 모습을 보면 절로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행복감에도 초보 엄마가 공직생활을 하고 시부모를 모시며 갓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미래에 이 일기를 아이에게 줄 날을 생각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한 줄 두 줄 짧은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 2013년 3월 4일 고등학교 입학하던 날

"고등학생이 되었다. 일신여고 교복을 입고 집을 같이 나와서 걸었다. 벌써 훌쩍 커버린 딸. 중학교 3년 내내 사춘기를 겪으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고 이젠 성숙한 모습으로 고등학생이 됐다. 내가 네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학원비를 내주는 것이 아니라 수빈이의 마음을 편하고 따뜻하게 해주는 것 아닐까 싶다. 딸! 힘내!"

그토록 사랑하던 딸이 사춘기 시절 가족들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밤새 방문을 걸어 잠그던 때는 부모로서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많이 망설였다고 한다. 또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이 씨 가족에 있어 사춘기 수빈이는 '시한폭탄'과도 존재였다. 결국 이 씨와 남편은 이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어 굳게 닫혔던 방문을 부쉈다.

# 2010년 12월 21일 수빈이 방문 부서진 날

"수빈이는 요즘 질풍노도의 시기다. 수빈이 방 앞에서 10분을 서서 문을 열라고 해도 꿈쩍도 안했다. 툭하면 방문 걸어 잠그는 수빈이. 이참에 버릇을 꼭 고쳐야 하겠다는 마음에 수빈 아빠가 방문고리를 부셨다. 한참을 망치로 부수고 들어가니 수빈이는 떨며 울고 있다. 수빈이를 한차례 때렸다. 대화가 안됐다. 서로 격한 마음만 일 뿐 진심은 통하지 않았다. 진심을 전해야 했다. 차분한 마음으로 얘기했다. 그리고 많이 울었다. 늘 좋은 엄마이고 싶었다."

이씨는 사춘기를 잘 이겨냈던 수빈 양이 수능을 한 달 앞둔 시기에 두 차례 외과수술을 받았던 것이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라고 소개했다.

이 과정에서 딸아이는 아픈 몸으로도 수능공부에 매진했고, 이 씨는 그 모습을 부모로서 도저히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일기에는 "차라리 대신 아파줄 수는 없을까" 하는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 2015년 10월 12일 재수술하던 날

"청천병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이제 아물기만하면 된다고 방심하고 있는 터에 재수술을 받았다. 너무 속상하다. 통증을 못이겨 아프다고 할 땐 마음이 정말 찢어진다. 그저 건강하게 내 옆에만 있어주면 고맙겠다는 생각이다."

이씨의 딸은 위기를 겪었지만, 대학에 입학했다.

# 2015년 4월 10일 처음 술 마시던 날

"술을 마셨다. 몸도 못 가눠 친구가 기숙사까지 데려다 줬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딸이 전화를 걸어 술에 취한 듯 아이처럼 투정을 부린다. 얼른 자라고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미팅에 나가서 안좋은 일이 있었단다. 이젠 정말 내게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술에 취해 혀가 꼬부라진 말로 전화를 건 딸과 통화를 했던 이씨는 박장대소를 하며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이 씨는 "정말 다 컸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딸을 지긋이 바라봤다.

딸의 성장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엄마의 심정을 말해주는 듯, 일기장은 항상 뒤에서 응원한다는 이야기와 딸에 대한 걱정들로 채워져있다. 하지만 늘 어린 아이같고 늘 보살펴줘야할 것 같은 딸이 이젠 어엿한 성인이 된 것이다. 마지막 일기는 수빈이에게 주는 편지형식으로 쓰여졌다.

# 2016년 5월 16일 마지막 일기

"우리 딸 수빈이!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날이다. 우리딸을 뱃속에서 키우는 날부터 20년이 되었다. 이젠 이 일기장을 딸에게 주기로 내 스스로에게 약속한 날이다. 벌써 세월이 이렇게 많이 지났지만 되돌아보면 점하나 찍은 것 같은 시간이랄까. 엄마는 수빈이 때문에 행복했다. 좋은 엄마로, 친구 같은 엄마로 지금처럼 남고 싶다. 무엇보다 잘 커주어서 고맙고 앞으로는 건강을 우선시하며 몸도 마음도 건강한 딸이 되어라. 부끄럽지만 이 일기가 수빈이가 사는 이 땅에서 '따뜻한 나침반'이 되길 바라며 이 일기장을 보낸다."

성인의 날 일기를 건네 받아 조용히 읽어 내려가던 수빈이의 눈에선 눈물이 떨어졌다. 그동안 당연하게만 여겨왔던 존재인 엄마. 엄마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읽고 나니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수빈이는 떨리는 입을 뗐다.

"이런 엄마가 어디 있겠어요. 저는 엄마만큼 이렇게 좋은 엄마가 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엄마의 이야기를 보니까 너무 울컥해서 눈물이 나요. 너무 감사드려요."

이 씨는 수빈양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모녀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다 아는 듯 했다.

여기저기 구겨지고 찢어진 일기장은 20년이란 세월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엄마의 냄새가 배인, 엄마의 손 때가 묻은, 엄마의 인생이 담긴 그 책을 수빈양은 소중히 품에 안았다.

이 씨는 인생의 첫 발을 내디딘 수빈이게 엄마의 일기가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이 일기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또 젊은 부부들에게도 자식을 위한 일기쓰기를 추천하고 싶어요. 아이와 함께 한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으니까요." / 김정하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