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저에게는 소중한 보물 상자가 몇 개 있습니다.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입니다. 아, 그렇다고 비싼 상자는 아닙니다. 화장품을 담았거나 비타민 같은 영양제 등을 담았던 도톰한 종이상자입니다. 어찌나 튼튼한지 웬만해선 구겨지거나 찌그러지지 않습니다.

여기에 제가 글지도 하는 학생들과 주변 분들이 준 편지나 쪽지 등을 담아 놓습니다. 어떤 초등학생은 껌종이나 초콜릿 포장지에 짧은 편지를 써 주었습니다.

이따금씩 상자를 열어 볼 때면 그들과의 있었던 이야기가 떠오라 자꾸만 행복해집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저는 편지를 받고도 답장을 제대로 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고맙다는 인사말을 전했을 뿐입니다.

정말 어쩌다 보니 편지 쓰는 일이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전화나 문자 또는 이메일로 소식을 주고받으니까 특별히 편지 쓸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한 때는 거의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았는데...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답장이 없으면 은근 편지가 제대로 전달되었나, 걱정을 하곤 했습니다. 밤새 쓴 편지를 우체통에 넣을 때 툭, 하고 떨어지던 그 소리가 아직도 귀에 남아있습니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지금도 저는 문구점에 가서 예쁜 편지지나 엽서를 보면 가끔 삽니다. 이런 저에게 우리 가족들도 신기한 엽서를 보면 사오곤 합니다. 중학생이 된 제자 몇 명도 엽서를 보면 제가 생각난다며 예쁜 풍경이 그려진 엽서를 한두 장 전해주었습니다. 저는 그런 엽서를 제 방에 붙여 놓고 그들과의 인연을 생각하곤 합니다. 그리고는 제 소중한 보물 상자 속에 보관합니다.

그 보물 상자 속에 기억나는 몇 통의 편지와 엽서가 있습니다. 방송작가를 하고 있는 한 후배가 바다를 보며 보낸 엽서와 한 동시 작가님이 제 동시집을 보고 보내주신 엽서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사정이 생겨 충주에서 잠깐 살다가 다시 서울 집으로 돌아간 백 선생님이 써 주신 편지와 엽서입니다. 촘촘하게 정성 담아 쓴 글을 읽으면 참 기분이 좋아집니다. 제가 촌스러운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이런 엽서와 편지를 읽으면 살아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 막 가슴이 떨리고 설렙니다. 이메일이나 휴대전화 문자에서 느끼지 못했던 그 무엇이 분명 숨어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도 작년부터 가끔은 엽서를 보냅니다. 마침 작년에 '사과나무 이야기길' 벽화에 재능기부로 참여한 동시와 동화가 담긴 엽서가 제작되어 주로 거기에다 씁니다. 제법 큰 이 엽서에 생일 카드로 사용하기도 하고 짧은 편지를 써서 보냅니다.

최근엔 작년 동화집에 이어 올해 동시집을 펴내 저에게 보내주신 한 작가님께 고마움을 담아 엽서를 보냈습니다. 또 누구에게 보낼까? 이런 제가 괜히 맑아지는 것 같아 그냥 기분이 또 좋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함께 1년에 한두 번은 꼭 부모님이나 선생님, 주변 분들에게 편지쓰기 수업을 합니다.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편지를 쓰는 아이들의 모습은 참 진지합니다. 편지를 쓰면서 어떤 아이는 효녀가 된 거 같다며 본인 스스로를 대견스러워 했습니다. 또 어떤 아이는 편지를 쓰다가 울어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살다보면 말로 전하지 못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이때 편지나 엽서에 그런 마음을 담아보는 건 어떨까 합니다. 편지를 쓰면서 또는 편지를 받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가슴을 통해 느껴지는 깊은 울림은 오래오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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