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선 철책경계를 맡고 있는 박쥐부대원들은 몸은 고달펐지만 때로는 즐겁기도 했다. 또 대낮부터 술만 푸는 동네 양아치들과의 신경전도 참을만 했다. 이대로 시간만 흘러가준다면 징글징글한 진흙 수렁을 떠나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날 밤, 그 사건이 모든 것을 뒤엎어버렸다. 제발 간첩하나 잡게 되길 고대하던 강상병도, 자신의 총에 거꾸러지고 수류탄에 찢긴 마을 청년 영길의 사체를 보고나서야 깨닫는다. 얼차려와 원산폭격의 고단한 가르침 속에 뼛속 깊이 새겼던 국가에 대한 충성과 적에 대한 정당한 증오심이 어이없게도 한 인간에 대한 살인을 불러왔다는 것을.
 왕성한 생산력의 김기덕감독은 여덟번째 작품 「해안선」을 「광기의 전염」에 대한 비극적 보고서로 만들어냈다. 칠흑같이 어둡던 그날 밤 술기운에 충동된 젊은 욕정들의 월장(越牆)으로 모든 것은 까발려졌다. 철책은 단지 적과 우리를 갈랐을 뿐 아니라 모든 이의 마음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었다. 애국심으로 포장된 광기와 그 애국심을 비웃던 냉소는 죽인 자와 죽은 자로 대치하면서 넘어설 수 없는 철책을 만든다. 또한 그 철책에 찔려 피 흘리며 사람들은 미쳐간다. 애인의 피와 살점을 뒤집어쓴 미영을 따라 강상병과 김상병도, 미영의 오빠도.
 감독은 유령처럼 떠도는 이 작은 섬의 광기가 실은 한반도의 분단현실에서 비롯됐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명령에 복종한 결과 살인자가 돼야했던 한 젊은이의 비극과, 애인의 죽음도 모자라 마취제 없이 수술대에 올랐던 어떤 미친 여성의 처참함은 한 민족끼리 총을 겨누고 반세기 넘어 버티고 있는 어리석은 현실의 부산물이라고.
 더욱 비극적인 것은, 그들이 무얼 잘못했는지 알지 못한 채 미쳤거나 끝내 죽음을 맞아야했다는 것이다. 그저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뿐인 김상병도 자신의 내부 어디쯤에서 슬금슬금 공포가 자라는지 알지 못한 채 강상병의 그림자에 홀려 총질을 하다 처참하게 죽었다.
 그런데 내막을 알지 못하는 건 그들 뿐 만은 아니다. 강상병을 관통해 해안선 전역을 점령한 저 가공할 공포와 광기에 대해 대체로 어리둥절하기는 관객 또한 마찬가지니 말이다.
 극 초반 강상병의 강박관념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던 「해안선」은 그의 의가사 제대 이후부터 공포영화적 관습을 완연히 드러낸다. 그러다 보니 해안선 철책으로 상징되는 한반도의 분단현실이라는 맥락에서부터 영화는 점점 이탈한다. 가해자인 강상병을 피해자로 자리매김시키며, 박쥐부대와 인근을 공포와 광기에 전염시키고, 급기야 명동거리를 혼란에 빠뜨리는 애초의 출발지점, 극중 갈등의 진앙지인 남북분단이라는 현실에서 초점이 자꾸 흐려지는 것이다.
 더욱이 감독은 엔딩장면에서 자신의 과거에 대한 연민어린 발언을 덧붙인다. 치열한 현실에서 빠져나와 「김기덕의 영화세상」에 안착한 「해안선」에 애상조를 드리우는 이 설정은, 미친 남녀가 바닷가에서 나누던 소통 등과 함께 영화에 묘한 낭만성을 색칠한다.
 「해안선」에 다양한 굴곡면을 부여하는 이러한 몇 가지 선택들은 영화에 대한 조화로운 감상을 종종 방해한다. 특히 아무리 핏빛 눈을 부릅떠도 여전한 장동건의 「아름다움」은 그중 대표적인 훼방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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