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이 되면 '오컬트'는 '현실'이 된다

나홍진 감독은 염세적인 느낌이 강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다 보니 '인간 본성의 회의와 고찰이 들어가겠고 엔딩은 찝찝하겠지' 라는 일종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화 '곡성'도 큰 줄기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오컬트를 소재로 한 연출은 의외로 선전했던 것 같습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복음의 힌트나 미끼를 뿌려놓습니다. 이를 중간중간 강조하며 나중엔 아예 "얘네 중에 진짜 나쁜놈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거든. 계속 헷갈리게 할건데 잘 찾아봐"라는 노골적 의도와 함께 플롯을 충실이 이행해갑니다.

그러면서 계속 시점을 바꿔 관객이 주인공의 혼란을 공유하며 추리에 몰두하게 하는, 편집의 목적을 알면서도 낚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유도합니다. 알면서도 속는다는 점이 대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이나마 의도를 숨기는 척 했다면 좀 더 세련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 본격적인 꼬임의 시작을 알리는 "떠나라고 xx럼아" 장면은 대사가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때에 깨진 몰입도가 엔딩까지 회복되지 않았던 점이 아쉽습니다.

영화의 상당부분은 ''다른 가족'에게 닥친 잔인한 위기를 부각시키면서 '내 가족'에게도 이런 일이 생긴다면?'의 양상을 보여줍니다. 남의 일은 '의심'이지만 내 일이 되면 오컬트는 현실이 됩니다. 미친사람, 누드귀신, 번개 같은 초~중반의 과장된 황당함. 이를 마주하는 관찰자의 의구심이 후반부에는 '진짜'일지도 모른다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연출은 꽤나 성공적입니다.

하이라이트인 일본식 음습한 주술의식과 신명나는 굿판의 대비는 조금 늦은 장면같기는 하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굉장히 가치있습니다. 다만 일본인과 무속인의 짧은 대비를 좀 더 강렬하게 이어나갔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영화의 포인트는 산속 시골마을이라는 특수성입니다. 사투리, 토속신앙, 순박이 주인공, 미상의 독버섯, 소문에 대한 민감함, 이방인 배척 등 작은 공동체 요소가 적재적소에 잘 배치돼 있습니다. 그러나 사건이 핵심 인물의 '행동의 의미'를 유도하다 보니, 곡성이란 배경은 떡밥이 미리 비치돼있는 '수동적인 공간'으로 느껴지게 합니다.

반면 전개에 따라 스스로 멸망해가고 능동적으로 변화하는 속성을 드문드문 보여줍니다. 스릴러의 생동감에는 마이너스가 되지만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고 캐릭터의 미스터리함을 붙잡아두는 것에는 플러스로 작용합니다. 결국 어떤 시점으로 보든 긁어 부스럼으로 마무리된다는 점에서 적절한 줄타기였던 것 같습니다.

호러가 아니기 때문에 아쉬운 점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의 불편함'에 대한 접근 방식입니다. 영화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따라서 이 불쾌감은 편집과 플롯의 비선형적 구조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인간의 어리석음이든 미증유의 현상 때문이든 알 수 없는 오싹함에서 오는 것은 아닙니다. 모호함을 위해 토속신앙을 이용하고, 믿음·기만을 위해 기독교를 이용한 건 좋았지만 동시에 상상력의 한계를 너무 명확하게 규정지은 건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의 감상은 '예측가능한 부분과 혼선을 준 과정을 '어떤 관점'에서 즐겼느냐'가 중요합니다. 전자는 어떻게 풀어내는지에 집중해서 흥미롭지만, 후자는 새로울 것이 없다는 점에서 장·단점이 있습니다. 영리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치밀하게 구성된 영화입니다.

http://blog.naver.com/pazder/22070797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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