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호 내과의사가 보는 의료와 사회

오늘 만난 청년이다. 이유는 모르지만 젊은 청년이 자살을 시도했고, 뇌파가 전혀 잡히지 않는 뇌사상태다. 얼굴을 보니 너무도 젊고 선량하다. 고등학교 3학년인 내 딸아이에게 공부 열심히하라는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저 평범히 살아가주기만을 바라는 것조차 욕심일 것 같다.

죽어가는 청년을 보고 내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나의 이기심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 다음에 밀려오는 생각, 저 청년의 부모의 마음은 어떠할지…. 필시 대기실에 주저앉아 있는 장년은 아비일테고, 곡을 하는 여인들은 이모일 것 같다. 삼삼오오 모여있는 젊은이는 친구들이겠지. 나도 각종 사고로 일찍 세상을 뜬 친구나 선·후배들을 여럿 보아왔다. 하지만 내 자식을 키우기 전까지 젊은이의 죽음이 그리 깊게 슬프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상황에서도 뇌사된 젊은이의 부모에게 "장기기증을 하면 여러 사람에게 새 생명을 줄 수 있다"는 비장한 정보를 전달하는 후배를 본다. 또 때론 '못할 말을 한다'며 멱살 잡히는 후배들을 본다. 의사는 지금 눈에 있는 생명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전혀 모르는, 어디선가 죽어가는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멱살을 잡히고 욕을 먹더라도 장기기증을 설득해야 한다.

청년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어떠한 이유든지 청년의 죽음이 '복수'보다는 '화해'가 되고, '비난'보다는 '아름다운 말'로 회자되기를 빕니다. 죽은자는 말이 없다고 하지만, 그 죽은자의 바람은 언제나 살아남은 자들의 행복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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