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김호일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사무총장

오래전에 이런 질문을 받아 본적이 있다. '한국의 문학인 중에 누구를 가장 좋아하는가?' 라는 질문이었다. 소위 '예술가의 삶'을 꿈꾸던 필자였기에 그리 어색한 질문도 아니었다.

누구나 인생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문학가는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머니를 통해서 사랑을 배우고 가족을 배우고 자연을 배우고 인생이라는 삶의 기초를 다지게 된 것이니까. 그리고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신이라는 존재를 섬기는 종교에 첫발을 들여 성서라는 베스트셀러를 여러 차례 읽고 배울 기회도 있었으니까. 지금도 그 어머니의 문학과 감성의 그늘에서 인생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필자가 사는 청주에는 지금 '문학사랑'의 열풍이 사뭇 뜨겁다.

이유인즉 정부가 '문학 진흥법'을 제정하고, '국립한국문학관'을 설립하겠다는 계획이 알려지면서 더욱 '청주문학'에 대한 집중조명이 일어나고 문학의 본고장이 청주임을 알리고 우리지역에 문학적 인물이 얼마나 많으며, 역사적 의미와 한국문학관 설립 장소는 청주가 적지임을 부각하는 움직임이 애절하리만큼 뜨겁다.

먼저 우리는 우리지역에 왜 국립한국문학관을 유치하려고 하는가에 관한 답이 먼저 정립되어야 한다. 문학이 가져다주는 커다란 영향과 놀라운 효과를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문학이 또는 한권의 책이 한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주게 되는가를 필자가 경험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미술대학에 입학해 신입생이던 1975년 어느 날 나는 '화가 이중섭'이라는 책한 권을 읽게 되었다.

책의 필자는 시인으로 존경하던 유명한 문학가 '고은(본명 고은태)'선생이었다. 책을 손에 들고 단번에 읽게 된 책 '화가 이중섭'은 평생토록 잊을 수 없는 생활방식을 터득하게 했다.

그 책 내용의 스토리에는 이중섭이라는 화가의 어린 시절부터 한국전쟁 발발로 고향원산을 떠나 피난 생활 속에서도 틈틈이 작품생활을 하는 모든 모습들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화가 이중섭이 사망하여 묻힌 곳은 망우리 공동묘지이다. 그 공동묘지에 입관을 하는 장면에서는 이중섭을 존경하던 후배화가들이 '나도 같이 묻어 달라며' 묘지를 파고 흙을 덮는 관으로 함께 뛰어들었다는 애절하게 슬퍼하는 장면에서 필자는 온몸에 전율을 느끼기까지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이 책을 쓴 시인 고은 선생은 생전에 이중섭 화가를 단 한 번도 만나본적이 없었다. 당시의 문학가들인 '구상' '김동리' '박고석' '함동선'과 같은 화가 이중섭을 아는 지인들로부터의 구술채록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책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소설가에 의해서 위대한 화가를 조명하는 문학적 가치를 발견한 필자는 화가가 문학가에 의해서 더욱 빛날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신기한 발견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날의 대부분의 화가들은 자기마케팅과 자신을 알리는 일에 여전히 부족한 면이 많다. 필자는 이때부터 예술대학 내에 문예창작과, 연극영화과, 무용과, 사진과, 공예과 가릴 것 없이 폭넓은 교제를 마음먹고 했다. 당시에 행동은 아마도 계획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양화과를 다니던 나에게 그 한권의 책은 폭넓은 인관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 스승이었다. 문학계의 선후배들이 된 소설가 김원일, 송기원, 표성흠, 전범수, 김홍성, 아동문학가 강태기 선생과의 인연으로 그들은 현재의 나 자신을 만들어가는 앞산 바위와 같은 스승들이 되었다.

며칠 전 우리지역 청주에서도 오랜만에 인상 깊은 문학콘서트가 열렸다. 콘서트가 끝나고 자유토론의 시간에 잊을 수 없는 귀중한 말씀을 해주신 분이 있다. 40여년을 교직에 계시다가 이제는 시인으로 활동하시는 바로 '김효동'선생님이시다. 오히려 문학콘서트 자체보다도 선생님의 문학사랑의 열기를 더욱 감동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세종대왕께서 초정에 머물며 완성하신 '훈민정음' 탄생의 고장,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직지심체요절' 직지가 탄생된 고장, 아직도 17개의 서점이 남아있어 시민들의 문학 사랑과 독서 욕구를 증명하는 청주.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 '직지'를 탄생시킨 청주에 '국립한국문학관'이 설립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오직 민주만 있고 민족이 사라진 대한민국, 물질만 있고 정신이 사라진 이 나라에 늦게나마 '국립한국문학관'이 탄생하여 미래의 주역이 될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자랑스러운 한민족의 후손임을 깨닫게 하자.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