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김호일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사무총장

서울이든 부산이든 농촌이든 어촌이든 골목이든 대로변이든 땅을 파고 공사가 한창이다. 이렇게도 끊임없이 짓고 부수고 깔고 뜯고 하면서도 도시 환경은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시대정신도 역사적 반영도 디자인감각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골목은 골목다운 골목길 디자인이 되었으면 한다.

보도블록 한 장을 깔더라도 대중교통이 다니는 도로를 제외한 주택가 이면도로들은 마을과 동내 특성을 반영한 골목으로 디자인하면서 탄생할 수는 없는지 고민해야한다. 집의 경계를 이루는 오래된 '담'을 허물고 화단으로 변화하길 바래본다.

청주 청원구청은 최근 청사의 뒷길을 정화하고 높은 담을 허물고 화단으로 정리했다. 가뜩이나 좁은 골목에 높은 담으로 막혀 답답해하던 주민들은 담을 제거하자 숨통이 트여 지역 주민들의 한결같은 칭찬이 자자하다. 참으로 잘한 일이다.

필자는 오늘 7월1일 개관을 앞둔 청주시립미술관 자문위원회를 다녀왔다. 시립미술관은 청주의 구 KBS방송국을 사들여 탄생시킨다. 이 또한 참으로 바람직한 행정이다. '문화로 다함께 행복한 청주'라는 청주시립미술관의 비전을 85만 우리시민들은 한번쯤 되새기길 바라본다.

이제는 청주시민들의 차례이다. 생명문화도시를 지향하는 청주는 타 도시와 비교하여 월등히 많은 문화시설들을 마련하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손만 내밀면 만날 수 있다. 조금만 걸으면 도달할 수 있다. 개관과 동시에 시립미술관 이야기로 시민들의 대화 속에서 꽃피고 그것이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노인들 사이에서 주된 이야기가 되길 희망해본다.

그러나 시민들의 반응은 늦을 것이다. 천천히 걸을 것이다. 그리고 머리에만 담을 뿐 가슴에 벅차 뛸 것 같지 않다. 그 이유는 전문가의 몫이다. 돌아보자. 이제까지 18년간 아홉 번이나 열렸던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가 그랬듯이 시민들의 반응은 언제나 '아주 천천히' '아주 느리게'이다. 이 또한 전문가의 잘못이다.

시립미술관 개관이든,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이든 직지코리아 행사이든, 알고도 안 오는 것은 시민의 자유요 몰라서 못 오는 것은 전문가의 잘못이다. 내가 만난 시민들은 언제나 바쁘다. 자녀를 키우느라 바쁘고, 가족을 돌보느라 바쁘고, 연로하신 부모님을 섬기느라 바쁘고, 건강을 위해 운동하느라 바쁘고, 이 불경기에 사업체를 경영하느라 바쁘고, 손님이 적은 식당을 운영하느라 하루하루가 바쁘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청주시민들은 문화시민이다. 시민들은 문화를 사랑한다. 1천500석이 넘는 청주예술의 전당을 꽉꽉 채우며 좋은 공연에는 기꺼이 지갑열기를 지체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전문가의 잘못이다. 시민들은 전문가다운 기획을 요구하며, 전문가들이 펼치는 세계적인 감동을 요구하는 것이다. 전문가라 자칭하는 그들만의 잔치와 취향을 경험해 보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시민들은 '양반'이다. 청주시민들은 우리가 '교육의 도시'에서 살고 있음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다려 준다. 이로써 청주가 '충절과 예절의 도시'임을 시민들은 증명한다. 이렇게 좋은 축제를 만들었는데도 시민들이 적게 온다고, 타 도시에서도 이렇게 많이 오는데 막상 청주시민들은 안온다고, 외국에서도 관심을 가지는데 왜 청주시민들은 반응이 적으냐고, 시민들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 그 모든 이유는 전문가라 자칭하는 우리들에게 있다. 무엇으로 당신은 전문가인가.

그 무엇이 당신이 전문가란 위치를 만들어 주었는가. 보통은 전문가라 자칭하는 교수님이나 박사님이나 높으신 지위를 가진 분들은 자기스스로 전문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전문가란 무엇인가. 사회가 인정하고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들이 인정해야 '참 전문가'이다. 필자가 본 몇몇의 전문가들은 자가당착에 빠져있다. 지역 현안의 토론문화조차 파악하지 못한 자기주장 적이고, 자기본위의 모순덩어리들이다.

그리 깊지도 않은 자신의 학식만을 떠들다가 가는, 현장과는 거리가 먼 학자 같은 전문가들이 대부분이다. 오늘도, 지금 이 순간에도 85만 청주시민들은 현장에서 살고 있다. 5천만 대한민국 국민들도 현장에서 살고 있다. 시민들은 잘못이 없다. 모두 우리들의 잘못이다.

85만 시민여러분, 이제,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조금만 더 아량을 베푸시고 조금만 더 너그러워 지십시오. 공예비엔날레, 직지코리아, 젓가락 페스티벌, 공예페어까지 제대로 준비하여 여러분의 사랑을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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