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창조경제팀장

살다보면 기쁜 날보다 아쉬움과 미련과 번뇌로 뒤척이는 일이 더 많다. 자신의 일이 마뜩치 않거나 하는 일마다 어긋날 때는 깊은 오지의 방랑자가 된 느낌이다. 사위어가는 청춘 앞에서, 하나 둘 내 꿈의 높이가 작아지는 가난한 삶 앞에서 쓸쓸하고 서럽게 눈물을 훔치곤 한다.

그런데 이런 투정이 사치라는 것을 알았다. 각다분한 노정일지언정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자신의 꿈을 빚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그동안 얼마나 졸렬하게 살아왔는지 반성하게 한다. 충북대 중문 지하의 작은 공간에서 열린 '충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행사를 통해서 말이다.

서울에 본부를 두고 있는 월드컬처오픈(WCO)과 청주의 청년문화기획단체 충동이 함께 진행한 이날 행사는 지역에서 자신의 꿈을 가꾸며 문화예술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의 지혜 나눔운동 일환으로 전개되었다. 보은의 기대리선애빌 이종민 대표, 수암골 연탄공예가 림민 씨, 색소폰 거리예술가 이승준 씨, 공부방 운영자 윤은미 씨의 이야기를 통해 열정과 지혜와 나눔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었다.

선애빌 마을은 친환경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도시의 번잡한 삶보다 자연을 벗 삼아 새로운 문화환경을 일구겠다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곳인데 공동으로 밥을 해 먹고, 매월 전기 없는 날을 운영하며,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친환경 농업을 일구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농촌체험마을로, 생태마을로, 공동체마을로 그 가치를 더해가고 있는데 나는 2년 전에 이 마을에서 문화특강을 하며 주민들의 '행복한 불편'에 대한 열정을 확인한 바 있다.

청주 수암골에 가면 연탄공예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피난민촌의 낡고 가난한 마을이 벽화마을로, 드라마 촬영지로, 카페골목으로 진화하는 과정에 연탄공예가 삶의 향기를 만들어 주고 있는데 림민이라는 젊은 작가의 아이디어가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버려진 연탄이지만 누군가에게 희망의 온기가 되어주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가르쳐 준 연탄재 하나 하나에 새로운 메시지를 담지 않았던가. 우리는 그 속에서 작은 기적을 발견한다. 생명의 기적을, 예술의 기적을, 그리하여 내 삶의 존재 이유를 발견한다.

색소폰 거리예술가 이승준 씨는 말주변이 없고 내성적인 청년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동네의 음악학원에서 색소폰을 배우게 되었고 회색거리로 나가 색소폰 연주를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변주하고 있다. 또한 청주 사창동에서 영어공부방 'STUDEO'를 운영하고 있는 윤은미 씨는 세계 곳곳을 다니며 한국문화를 알리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등 대한민국 홍보대사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그녀의 좌충우돌 세상 이야기를 통해 청춘의 희망을 발견한다.

시인 장석주는 청년들이 읽어야 할 책으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박지원의 열하일기',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를 꼽았다. 이 중 '데미안'은 선과 악, 질서와 혼돈, 빛과 어둠 사이에서 방황하는 싱클레어라는 주인공이 겪는 성장통을 다루고 있다. 아픔을 견디지 않고 위대한 문화와 생명이 탄생할 수 없음을 이야기하는 책들이다.

산다는 것은 피치 못할 시련을 견디고 역경과 싸우며 불확실성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나만의 삶과 문화와 향기를 만든다.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 지역을 아름답게 하고 세상을 유쾌하게 하는 것이다. 내가 견뎌야 하는 이유와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 역시 이 속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비좁은 지하 골방을 빠져 나오니 땅거미가 조촘조촘 내려앉기 시작했다. 골목길은 여전히 쓰레기들로 가득하고 거리의 사람들 표정은 하나같이 고난의 짐을 짊어진 듯하다. 충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니 상심하거나 자책하지 말자. 마음껏 희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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