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실장·대기자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이후 패닉 상태에 빠진 영국인들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영국인들이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이민자에게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겼다는 반감도 있지만 30조에 가까운 유럽연합 분담금 때문이다. 무엇보다 유럽연합이 힘들 때마다 분담금을 추가로 부담 해온 것이 못내 아까웠을 것이다. 하지만 브렉시트로 분담금은 아낄 수 있지만 대신 많은 후유증이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 세대 간 지역 간 갈등을 촉발시키고 있다. 분담금이 그나마 유럽금융시장에서 영국의 지위와 자존심을 보장해 주었지만 이젠 달라졌다. 영국인들이 제2의 '팍스 브리태니카'를 추구했던 선택이 작가 유시민 말대로 자칫하면 나라가 파탄 나게 생겼다. 세계에서 가장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된 민주주의의 발상지에서 이런 어이없는 패착이 나온 것은 무엇일까. 무책임한 정치지도자들의 그릇된 판단과 선동 때문이다.

내 곳간에 쌓여있는 쌀가마니를 없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는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래도 브렉시트 때문에 전 세계가 감기몸살을 앓는 글로벌 경제시대에 독불장군으로 살 수는 없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지방재정개편 안에 고양·과천·성남·수원·용인·화성등 경기도내 대도시의 분노가 들불처럼 일어나는 것을 보고 브렉시트에 대한 기시감이 들었다.

지방재정 개편의 핵심은 대도시 수입원인 법인 지방소득세와 시·군 조정교부금 일부를 쪼개 중소 시·군에 나눠주겠다는 것이다. 영호남과 충청 등 8개 도의 152개 시·군이 대상이다. 이 때문에 재정이 넉넉한 소수의 경기도 지자체와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비수도권 지자체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정부가 개편 안을 추진하려는 것은 지자체간 재정불균형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자립도를 살펴보면 격차가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다. 경기 성남 61.9%, 화성 61.5%, 용인 60.8%다. 반면 전남 신안은 7.4%, 해남 9.95, 진도 9.4%다. 기초자치단체간 빈부격차가 이렇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다른 지자체에선 꿈도 못 꿀 복지삼종세트(청년배당, 무상교복, 산후조리)를 추진하는 것도 탄탄한 자금력 때문이다.

경기도 대도시 곳간에 살림이 넉넉하게 쌓인 것은 근본적으로 수도권이라는 지리적 이점 때문이다. 수도권이 빠르게 팽창하면서 블랙홀처럼 자본과 인력을 빨아들였다. 반면 고령화와 저출산의 덫에 빠진 지방은 작아졌다. 산업인력이 줄어들고 자본이 역외로 유출되는 등 지방경제의 기반은 취약해졌다. 실례로 지난해 3023억원에 달하는 화성시 법인지방소득세중 70% 이상이 삼성전자, 기아차, 현대차가 납부한 것이다. 굳이 정부의 지방교부금을 받지 않아도 되는 지자체는 정부에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되니 큰소리를 칠 수 있다.

수도권이 경제력이 집중되고 비대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노무현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을 국정과제로 추진했지만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늘어났다. 이 때문에 비수도권 시·도지사는 오랫동안 지방재정 개편을 손질해 달라고 수차례 요구해왔다. 정부의 지방재정개편이 자칫 지방자치의 근간을 훼손하고 지자체의 재정자주화를 침해한다는 논리가 틀린 것은 아니다. 세입구조를 손대야 한다는 논리도 맞다. 하지만 지자체간 양극화가 심해진다면 정부가 나서서 형평성을 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되레 개편을 찬성해야할 더민주당이 부유한 자자체 입장을 대변한다는 점이다. 지자체간 과도한 재정격차를 좁혀 형평성을 맞추겠다는 정부의 입장은 오히려 더민주당이 반겨야 할 정책이다. 분배, 균형, 평등이라는 참여정부의 정치철학을 계승했으면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폭넓은 시각이 필요하다. 하지만 더민주당은 4.13총선에서 짭짤한 재미를 본 수도권표를 의식한 대선 전략으로 '실리'를 챙기겠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이시종 지사가 소속정당인 더민주당에 대해 "수도권공화국을 선언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지방을 무시하고 있다"며 울분을 토로한 것은 정치적인 제스처가 아닐 것이다.

전국의 모든 지자체가 잘 살 수 있는 정책은 없다. 하지만 지자체간 빈부격차로 인해 양극화가 심해지는 것은 옳은 정치가 아니다. 미키이밸리는 "아무리 강력한 국가라도 혼자서는 생존하고 번영할 수 없다. 주변의 약한 이웃들과 함께 생존하고 번영하는 방식을 취해 네트워크를 넓혀야 장기적으로 생존기반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생의 정신은 공동체의 생존을 보장하는 진정한 화합 전략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략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영혼 없는 정당, 내 곳간의 살림살이만 끌어안고 포퓰리즘 정책만 남발하는 자치단체장을 보면 브렉시트의 영국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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