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김호일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사무총장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다른 도시나 마을 등을 여행하며 지역 어르신들을 만나게 되면 '자네는 본관이 어디인가?' 라든가 '자네는 어디 김 씨인가?' 등의 집안 내력이나 족보와 관련된 질문들을 받게 된 기억이 있으나, 청주에서 새롭게 인사드리는 많은 어르신들은 그런 질문을 하지 않으신다.

이는 아마도 지역이든 중앙이든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 매체나 그 어디에도 이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할 올바른 인간 본연의 정신문제를 논하는 기사나 논설이나 칼럼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다들 걱정하듯이 지금 이 나라의 정신문화가 어지럽게 돌아가는 것도 지난 30여년간 '참교육'의 상실로 국가에 도덕성이 사라지고 정신의 문제보다 물질만능의 사회로 전락해 버린 것 때문일 것이다.

퇴계 이황은 필자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에 한분이다. 퇴계가 역사적 인물로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것은 성리학자일뿐만이 아니라 '인간을 공감 할 줄 아는 사람', '향기 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는 도서로, 뮤지컬로, 연극으로도 만날 수 있다. 퇴계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가 있다.

최근에는 한국기업 뿐만이 아니라 '구글'이나 '애플'같은 글로벌기업들이 신규인재를 채용할 때 '인문학적 소양의 소유자'를 우선적으로 채용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예전의 기업전략에는 상품자체의 홍보나 판매위주의 경영방침이었다면, 지금은 수요자의 니즈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 필수인 것이다. 즉 공감하고, 사람다움이 우선되지 않으면 넓은 공감대를 찾을 수 없고, 공감대 인식 없이는 홍보나 판매 전략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람의 마음과 직접적이면서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 문화 정책과 문화행정가들이 우선적으로 가져야 할 본질은 '자아의 발견 즉 자기 자신을 똑바로 아는 일'이다. 어느 소설가는 그것이 바로 직지(直指)라 했다. 문화란 새롭게 변화하는 생활속에서 내 안의 또 다른 나의 이야기와 당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것을 우리의 이야기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문화란 생활과 사회를 시민들이 건강하게 향유하도록 돕고 '인간다운 삶'을 영유하도록 돕는 일이다.

그래서 퇴계선생은 아마도 주향백리(酒香百里), 화향천리(花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라 했던가? 좋은 술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향기로운 꽃내음은 천리를 가고, 인품이 훌륭한 사람의 향기는 만리에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어디에든 전통주가 있고 아름다운 삼천리강산 산과들에는 꽃들이 지천이며, 청주의 맑은 고을에는 85만 사람향기 나는 양반들이 살고지고 있지 않은가. 필자가 청주에 살면서 새롭게 느끼는 또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문화가 인간의 본분이나 가정과 사회와 나라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인 것이다.

이미 옛일이 되었지만 돌이켜 보면 필자는 엄격한 가정환경 하에서 어린시절을 자라왔음을 쉽게 기억한다. 냉혹한 겨울 산에서도 나무를 하고 저녁이 되면 군불을 때고, 새벽과 다름없는 이른 시간에 할아버지의 세숫물을 준비하며, 대청마루를 물걸레로 청소하던 문화가 이미 추억이 되어버렸기에 더욱 슬프다. 가정과 사회의 법도를 가르치던 유교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가정에서 자라난 필자에게 있어서 퇴계선생님은 특별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할아버지의 여동생이 퇴계선생의 맏종부(맏며느리)로 시집을 가셨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퇴계선생이 낙향하여 학문을 닦던 도산서원(陶山書院)의 원장으로 계시기도 했기에 할아버지를 따라 안동(安東)일대와 성주(星州)한개 마을의 문중어르신들께 인사를 다닐 수 있는 기회를 종종 얻기도 하였다. 지금은 고층 아파트 환경으로 변해버린 현대사회라서 우리나라 어디에도 정신문화를 중요시하는 분위기를 찾기 어렵다.

스승은 없고 선생만 존재하는 이시대의 교육, 정신은 사라지고 물질만능이 위세등등한 현실에서, 민주주의만 있고 민족정신이 사라진 내 나라를 위해, 문화를 사랑하는 85만 청주시민들께 또 한 번 간절히 요청 드려 본다. 시민과 함께, 지역과 함께, 문화와 함께 진정한 '생명문화도시 청주'로 발돋움해 가고 있는 지금. 청주문화로 청주시민의 '문화사랑 향기'로, 이 나라전체에 전해주는 감성문화도시의 등불을 높이 들어보자. '가자 청주여, 문화로 세계로' 淸州人의 香氣로 萬里를 아름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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