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르포르타주] ④ 푸른나래 공부방 아이들

푸른나래공부방에서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들. /신동빈

[중부매일 김정미 기자] 지연(가명)이는 중국에서 태어났다. 엄마와 아빠가 잇따라 한국에 입국한 뒤 고모와 함께 한국 땅을 밟았다. 초등학교 5학년. 또래 친구가 많은 활달한 성격이지만 절대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숨기고 있고, 앞으로도 숨길 거예요. 밝혀지면 친구들이 무서워하고 따돌릴까봐 싫어요."

지연이 엄마는 북한 출신이다. 제3국인 중국을 통해 입국한 북한 이탈주민.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엄마의 고향에 대해 친구들은 무서운 나라라고 했다.

초등학교 6학년인 명국(가명)이도 엄마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엄마는 조선족인 아버지를 만나 중국에서 결혼하고 명국이를 낳았다.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한국을 찾았지만 입국 시기도 중국 생활도, 북한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도 전혀 대꾸를 하지 않았다. 긴 침묵이 흐른 뒤 나온 한마디. "말하고 싶지 않아요…"

공부방 정화순 교사는 명국이에게 상처가 있다고 귀띔했다.

"공부방에 오기 전 일반 지역아동센터를 다녔어요.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상처를 받은 것 같아요."

지연이와 명국이는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 위치한 푸른나래공부방을 다닌다. 학교 선생님과 엄마의 추천으로 알게 된 곳, 북한이탈주민 자녀들을 위한 공간이다.

국내에는 26개에 달하는 북한이탈주민 자녀들을 위한 대안학교와 방과 후 공부방, 그룹 홈이 있다. 충북에선 푸른나래공부방이 유일하다.

청주YMCA가 남북하나재단의 지원(위탁)을 받아 지난 2012년부터 아이들의 학습지도와 정서적 지원,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정화순 교사는 북한이탈 과정에서 겪은 부모의 트라우마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다 보니 자존감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언뜻 보면 보통 아이들과 다를 바 없지만 자존감이 엄청 낮아요. 엄마가 일단 북한이탈주민이고, 탈북과정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아이들에게 해소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한국에서 재혼해 정착한 사례도 있지만 상당수 북한이탈주민 가정은 편모가정이거나 조선족 남편과 함께 들어오는 등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이들의 한국 정착을 도울만한 여유가 부모에게 없다보니 공부방은 아이들의 허전함과 상처를 치료해주고 달래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심리치료를 많이 해요. 미술치료, 음악치료, 연극치료, 원예치료를 하다보면 아이들의 심리상태를 파악할 수 있죠. 안타깝지만 감정조절을 못해 짜증을 내거나 소리를 버럭 버럭 지르는 아이들이 적지 않아요. 큰 친구들은 동생들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고요. 심지어 부모 상담을 할 때 저희들 앞에서 아이에게 손찌검을 하는 경우도 봤어요."

공부방 교사들은 부모상담이 절실하지만 상담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부모들이 참여할 시간이 없어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했다.

올해로 5년차. 간판도 없이 북한이탈주민 2세 아이들을 돌봤던 푸른나래공부방은 올해 처음으로 성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아이들을 위해 공개 크라우드 펀딩을 시도한 것이다.

남북하나재단은 시설의 '자립'을 이유로 위탁기관에 대한 지원금을 대폭 삭감했고, 처음 문을 열었던 2012년과 비교하면 재정은 반토막 났다. 아이들은 점점 증가하는데 지원금이 줄어들다보니 프로그램도 내실을 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푸른나래공부방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유치부 3명, 초등학생 10명, 고등학생 2명 등 모두 15명. 학년에 따라, 출생지역에 따라 아이들의 고민도 다양하지만 처음처럼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을 어루만져주지 못하다보니 아쉬움이 많다.

크라우드 펀딩은 북한이탈주민 가정의 빠른 한국사회 정착을 돕고 아이들의 기초학습, 정서적·심리적 지원을 위한 공간 이전과 함께 시작됐다. 최근 공부방은 가경동에서 복대동으로 이전했다.

공부방 교사들은 이번 크라우드 펀딩이 북한이탈주민 2세에 대한 지역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긍정적 계기가 되길 희망하고 있다.

충청북도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충북의 탈북학생은 모두 80명. 초·중·고등학생을 더해 북한에서 태어난 아이가 29명, 중국 등 제3국에서 태어난 아이가 51명으로 3국 출생 아이들이 전체 63.7%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3년간 추이를 살펴보면 탈북학생의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3년 61명에서 2014년 67명으로 9.8%포인트 상승했고, 2015년에는 80명으로 전년 대비 19.4%포인트 늘어났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 학령기에 접어들지 않은 아이들까지 더하면 북한이탈주민 2세 아이들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누군가는 관심 가져야 할 우리 이웃, 다음세대의 통일 주역. 공부방 교사들은 충북에 제2, 제3의 푸른나래공부방이 더 생겨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 글 김정미·사진 신동빈

 ※푸른나래공부방 성장 프로젝트=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전하며 시도한 크라우드 펀딩이다. 오는 15일까지 '오마이컴퍼니'(www.ohmycompany.com) 회원가입 후 '푸른나래공부방 성장 프로젝트'를 선택해 후원하면 된다. 인터넷 사용이 어려운 경우 계좌(신한 140-002-933858 청주YMCA)로 직접 후원도 가능하다.(문의: 043-259-6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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