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김민정 수필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수석(壽石) 2점을 선물 받았다. 그 중 한 점은 주먹보다 조금 큰 수석으로 성모 마리아상의 얼굴을 쏙 빼닮았다. 어떻게 보면 태아의 모습이기도 하고, 어미가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모습이기도하다. 옆으로 보면 '생각하는 로뎅'의 조각상을 닮기도 했다. 수석을 바라보면서 이 자그마한 돌에서 여러 가지의 추상미를 발견 할 수 있다니 기이하고도 신비스러웠다.

보는 위치와 각도에 따라 그 형상을 달리하는 수석을 어울릴 만한 공간을 찾다가 거실의 하얀 벽을 배경으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하얀 벽에 더욱 돋보이는 검은 마리아상은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숙연해 온다. 단아하고 고요한 모습에 모나지 않은 동글동글 어여쁜 모양새는 많은 궁금증을 갖게 한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지나온 세월들을 생각할까, 자신의 현재 생활을 생각할까, 출생지는 어디이며 몇 살쯤이나 되었을까, 어느 산 어느 땅속에 묻혀 있다가 강물로 들어가 물에 씻기고 씻겨 여인의 형상으로 태어 난 것일까, 애정을 갖고 바라보니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되고 역사가 되었다. 단단하기도 한 모습은 무엇이든 다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부드럽기도 하다. 부드러움 속에 감춰진 유연함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힘도 있어 보인다.

무슨 소원이든 들어 준다는 검은 성모상이 스페인 몬세라트 수도원에 있다. 검은 성모상에 손을 대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설이 있어서 모두가 유리벽에 손을 한번씩 대고 소원을 빈단다. 오는 9월이면 그 검은 성모마리아 상을 만나러 스페인에 간다. 여행의 설렘과 함께 마음은 이미 수도원에 가 있다. 그곳의 신비한 검은 마리아상 보다는 못할지라도 이 수석을 매만지며 가족과 지인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어본다.

또 다른 한 점은 엉덩이를 내리고 조용히 앉아 있는 강아지 모습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스케 강아지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귀여운 아기 곰을 닮은 것 같기도 한 것이 내 마음에 쏙 들어와 앉았다. 적당한 수반이 없어 찾다 보니 언젠가 공방에서 만들었던 질그릇이 눈에 띄었다. 질그릇에 구입해온 금빛모래를 가득 깔았다. 흙덩이에 불과했던 보잘 것 없고, 때깔도 없는 질그릇에 수석을 얹어놓으니 제법 훌륭한 작품이 탄생했다. 질그릇이라도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짐을 새삼 느낀다.

보석을 담으면 보석함이 되고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통이 된다. 남들이 쓸모없고 하찮게 여기는 것일지라도 그것을 가치 있게 쓴다면 그것은 보석이 되고 보석함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의 마음에도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성인이 되기도 하고 폐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의 삶 역시도 인내하고 잘 갈고 닦으면 진정 빛나는 삶이 되지 않을까 싶다.

수석에 물을 뿌린다. 위로부터 내리 타는 물은 수석이 살아 움직여 내게로 다가오는 듯 하다. 외부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는 수석에서 중심을 배운다. 중심은 나의 몸을 바로 세우고 가족의 마음을 잡아주고 가문을 일으켜 세워 한나라를 굳건히 하는데도 한몫을 한다. 만고풍상을 다 겪으며 모진세월과 함께 영구불멸의 모습으로 덕성을 품은 돌은 말이 없어도 많은 가르침을 준다.

하얀 거실 벽을 등진 수석 덕분에 거실이 한층 품위가 있어 보였다. 눈 코 입이 아무리 예쁘더라도 바탕이 검으면 제빛을 발휘 할 수 없다. 바탕은 심성을 뜻하기도 한다. 사람도 심성이 곱고 깨끗해야 더욱 돋보인다. 수석에 문외한인 내가 성숙된 심미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수석을 통하여 품성을 가다듬고 인생의 참된 가치와 생활의 지혜를 배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