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홍양희 충북테크노파크 기업지원단장

지난 3월,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의 대결 이후 갑작스런 바둑 붐이 불어왔다. 최근 국제정세는 치열한 공방이 오가는 바둑판과 다르지 않다. 한국의 사드배치 결정에 이어 남중국해 영유권에 대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결로 중국 내 여론과 국제사회 이해관계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자국 이익에 관해 한 치의 양보 없는 중국의 대응을 바라보며 제2의 한중 마늘분쟁 사태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바둑에서 돌을 따내기 전 결정적 한 수를 단수라 표현한다. 중국은 1990년대 들어 이미 한국의 제1무역국으로 자리 잡았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의 입장에서 중국의 경제제재는 가장 두려운 단수가 아닐 수 없다. 국민의 정부 시절인 2000년 중국산 마늘에 대한 농민 보호를 목적으로 한시적인 세이프가드 조치를 취한바 있다. 중국은 맞대응으로 한국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의 수입을 잠정 중단했고, 불과 한 달여 만에 한발 물러선 입장으로 합의를 요청했다.

안타깝게도 중국 경제제재의 가장 큰 피해는 중소기업이다. 무역보복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경우 단기간 무역 손실이 큰 타격으로 다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제제재가 어떤 방향으로 다가올지 전문가의 의견을 빌어 조심스럽게 언급하자면, 3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정책적 수단으로 비관세장벽 강화를 통해 한국 수입품목을 제한할 수 있다. 둘째, 경제적 수단으로 한국 금융시장 및 기업진출 자본을 철수할 수 있다. 셋째, 문화적 수단으로 중국 내 민족주의를 자극하여 한국 기업과 제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통해 불매운동을 촉진시킬 수 있다.

대중국 국제정세는 바둑판과 다르지 않다. 상대가 두는 수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판세 속에 두 수 앞을 내다볼 수 있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 국가 간 갈등으로 야기된 국제적 흐름을 막을 수 없지만 전략적 처세를 통하여 위기를 극복하고 다음 수를 대비하는 방안을 바둑판에서 찾고자 한다. 첫째, 만패불청(萬覇不聽), 매우 큰 패를 내세워 상대의 수가 나서지 못하도록 한다. 중국은 국제정세에 따른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략적인 방안으로 경제제재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국가적 차원의 이익에 따른 것이며 중국 소비자와는 상충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 제품은 중국 시장에 경쟁력을 잃지 않고 있다. 특히 한류문화는 물론, 충북의 강점인 화장품, 반도체, 식품분야에서 눈에 띄는 실적을 보이고 있다. 제품 경쟁력을 강화하여 대체 불가능한 전략상품으로 접근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둘째, 행마(行馬), 조화를 이뤄 세력을 펴다. 지난 7월 충북TP에서 중국의 대형 유통기업 후이인社 초청 수출상담회가 개최됐다. 후이인측 상품기획 담당자가 직접 중소기업과 상품을 만나고 기업을 방문하는 일정이 이어졌으며, 일부 기업은 구체적인 입점 시기와 가격 조정이 이뤄졌다. 중간 바이어 없이 수출을 이뤄낼 수 있는 성과의 원동력과 이례적으로 중국 상품기획 담당자가 직접 올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수출상담회에 참여한 중소기업과 기업지원 유관기관 간 조화라고 할 수 있다. 서로를 보완할 수 있는 네트워크 구축으로 중국시장이 외면할 수 없는 거대한 세력을 펼치는 전략이 필요하다.

마지막 장문(藏門), 상대의 돌을 직접 막지 말고 포위하여 잡는다. 국제관계의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과시적 제재조치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나 어떤 방식이건 무역보복이 시작된다면 다가올 피해를 비켜갈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현 상황 속 리스크를 감수하고 중국시장을 공략해야 할 이유가 없다면 여타 주변국으로 눈을 돌려 집중하는 것 또한 현명한 수가 될 수 있다.

바둑에서 유래된 꼼수는 상대의 실수를 염두에 두는 일종의 속임수를 뜻하지만 상대가 의도를 간파하고 제대로 응한다면 반드시 손해를 보는 수이기도 하다.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미생에서 '꼼수는 정수로 받는다'는 대사가 있다. 작금의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정수를 두되, 혹여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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