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톡톡톡] 더위야 물러가라

더위를 피해 송계계곡을 찾은 피서 인파

[중부매일 정구철 기자] 연일 30도를 훨씬 웃도는 폭염이 2주째 이어지고 있다. 바캉스를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계절이다.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바다로 산으로, 계곡으로 피서를 떠나는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인천공항에는 해외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지난달 31일 하루에만 무려 20여만 명이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폭염이 인구 대이동 현상까지 몰고온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이면에는 생활터전을 지키기 위한 서민들의 구슬땀과 눈물겨운 사투도 이어지고 있다. 본보는 무더위를 이겨내기 위한 사람들의 천태만상을 르포를 통해 취재했다. / 편집자



휴가철이 절정에 이른 지난달 30일, 주말까지 겹쳐 고속도로는 만원이다. 군데군데 고속도로 휴게소는 잠시 휴식을 취하려는 피서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하나같이 휴가의 기대감으로 들떠있는 환한 얼굴이다.

여름철 최고의 피서지인 강원도로 통하는 영동고속도로는 곳곳이 정체로 이어졌다. 교통방송은 실시간으로 전국의 고속도로 교통상황을 중계하고 있다.

충주지역의 최고 피서지인 송계계곡은 이날 입구부터 차량이 밀려, 가다서다를 반복했고 조금이라도 앉아 쉴 자리가 있는 장소는 이미 자리잡은 피서객들로 발디딜 틈조차 없다. 아영장은 형형색색의 텐트로 가득 찼고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 사이로 삼겹살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어린이들의 신나는 물장구와 재잘거림은 지켜보는 이들의 얼굴마저 환하게 만든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있지만 구석구석의 계곡과 산에는 더위를 피해 나선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열대야가 이어지고 이를 피해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밤풍경도 바뀌었다.

더위를 피해 송계계곡을 찾은 피서 인파

충주에서 가장 번화한 신상권지역인 '신연수동'은 밤이면 젊은이들의 무리로 불야성을 이룬다.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커피숍이나 빙수가게, 호프집은 만원이다. 친구와 연인끼리 모여 앉은 젊은이들은 밤 늦게까지 이야기꽃을 피운다.

일부 호프집은 고객들이 바깥바람을 쐬면서 맥주를 마실 수 있도록 아예 가게 밖에 자리를 마련해 놓고 있다.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실내피서지도 인기를 얻고 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영화관은 최고의 실내피서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여름방학 기간인데다 최근 '부산행'과 '인천상륙작전' 등 개봉영화의 흥행까지 힘입어 영화관은 연밀 매진사례다. 열대야를 피해 늦은 밤에 심야영화를 보러오는 사람들도 상당수다.

더위로 허해진 몸을 보충하기 위해 찾는 염소탕집이나 삼계탕집도 호황이다.

음식을 잘하기로 소문난 충주시내 일부 보양음식점들은 복날은 물론, 평일에도 손님들로 가득 찬다. 시원한 음식을 파는 냉콩국수나 막국수집도 수십여 분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문전성시다.

가전제품 판매장에는 선풍기나 에어컨 등 냉방용품을 찾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에어컨 기사들은 밀려드는 수리 예약으로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

하지만 무더위가 계속되면서 울상을 짓는 곳도 있다.

골프 8학군으로 소문난 충주지역의 골프장들은 여름철 불황 타개를 위해 경쟁적으로 할인행사에 나서고 있지만 부킹실적은 기대 이하다.

폭염으로 일사병까지 우려돼 이열치열을 즐기려는 일부 골프매니아 외에는 한낮 라운딩을 피하기 때문이다.

골프장들은 불황 타개를 위해 낮시간 대신 야간 개장을 통해 고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이와는 상대적으로 실내에서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스크린골프장은 인기다.

일부 음식점이 호황을 이루는데 비해 불을 피워야 하는 삼겹살집이나 찌개·전골가게 등은 텅 비었다.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떠나면서 시내 의류판매장을 비롯한 대부분 상점들도 개점 휴업상태다.

계속되는 무더위 속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더위를 피하고 즐기려는 사람들과는 달리 생활전선에서 더위와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사투도 이어지고 있다.

충주시 용관동에 있는 한 유기농쌈채 재배농가.

이곳에서는 서너명의 사람들이 그야말로 찜통이나 다름없는 하우스에서 쌈채를 수확하느라 여념이 없다.

대부분 휴가를 떠난데다 한낮 무더위로 외출을 꺼리면서 충주 도심 상가지역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우스 한쪽에 있는 대형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지만 오히려 더운바람을 내뿜고 있다. 하우스 안은 무려 40도에 육박해 불과 몇초만 서 있어도 땀이 흥건하게 옷을 적신다.

쌈채를 수확하는 사람들은 연실 물을 마셔대지만 더위를 이기기에는 역부족이다.

"쌈채 소비가 많은 성수기여서 수확이 밀려 있지만 가능하면 더위를 피해 새벽시간에 수확을 하는 수 밖에 없고 한낮에는 도저히 작업을 할 수가 없습니다"

농장 주인이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훔치며 말했다.

인근에 있는 양계농가에서는 하루 종일 양계장 안에 있는 라디에이터를 통해 수증기를 뿌려대지만 대부분의 닭들은 꼼짝도 않고 입을 벌린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이 농장 주인은 "더위를 막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매일 닭이 수십여 마리씩 죽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공사 현장도 마찬가지다.

충주의 한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은 모자로, 수건으로 땡볕을 가렸지만 입고 있는 옷은 방금 물에서 건진 듯 흠뻑 젖은 상태다.

이들에게는 햇볕을 피할 수 있는 장소조차 없다. 일하는 중간중간 소금을 먹으며 보충하는 것이 전부다.

"넥타이 매고 시원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부럽지만 배운게 없어 그러지도 못하고… 마누라와 아이들과 먹고 살려니 어쩔 수 없지요"

무심하게 푸념을 내뱉는 한 인부의 검게 탄 얼굴에는 짙은 주름이 드리워져 있다.

택배기사들의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무거운 짐을 들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땀으로 흠뻑 젖는다.

택배기사 A(49)씨는 "생계를 위해 뛰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힘겨운 여름"이라고 말했다.

폭염이 2주째 이어지면서 온열병 환자가 지난해보다 2배나 늘었지만 에어컨으로 인한 냉방병 환자도 크게 늘었다.

이 여름의 무더위가 누군가에게는 즐길거리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잔인하고 혹독한 삶의 무게로 다가오고 있다.

정구철 / 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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