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희씨] 도서리뷰 - '소년이 온다'

그 어느 해보다 뜨거웠던 7월을 보내면서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5·18 광주민중항쟁 (공식 명칭은 '광주민주화운동'이지만 '민중항쟁'으로 부르는 게 더 맞는다고 생각한다)을 다룬 소설 가운데 최고의 찬사를 받는다니 꼭 읽어봐야지 했던 소설이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뜨거웠던 열흘, 도청에 남았던 이들과 그 가족들의 아픈 이야기다. 소설은 그들의 고통을 참으로 덤덤하게 눌러썼다.

주인공인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 이후 시신을 찾기 위해 제 발로 도청으로 간다. 동호는 계엄군의 총에 맞아 험해진 시체들을 닦고 그들을 위해 초를 밝히며 '혼이 있을까, 혼이 있다면 어디로 가고 있을까' 생각한다. 어린 동호에게 사람들은 묻는다. "너는 죽은 사람이 무섭지 않느냐."고. 동호는 군인들이 무섭지, 죽은 사람은 무섭지 않다고 말한다. 또 사람들을 죽게 한 군인들을, 정대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한다. 그러나 도청에 끝까지 남았던 동호도 결국 죽음을 맞는다.

동호가 그토록 찾던 정대의 몸은 이미 시체더미에서 썩을대로 썩어간다. 정대의 혼은 군인들이 시체를 실어나르는 모습을 똑똑히 목격한다. 그리고 그 군인들 눈앞을 어른대며 끊임없이 질문한다. 누가 나를, 누나를 죽였을까. 정대는 말한다. "비록 혼이지만 그들에게 가야 한다. 나를 조준한 눈,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그들이 악몽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어른거리고 싶다…."

정대의 혼은 누나의 혼을 만났을까. 죽어서라도 누나의 손을 잡았을까.

이야기는 이제 남겨진 사람들의 삶을 기록한다. 살아남아 빨갱이 년이라고 모진 고문을 당했던 은숙누나와 선주누나 이야기다. 어린 동호에게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던 누이들, 카스테라를 쥐어주며 먹으라던 누나들이다. 누나들의 삶은 장례식이 되었다.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게 아닌 치욕스런 삶이라고 말한다. 당신이 당했던 고통을 이야기해달라는 이에게 선주누나는 "삼십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 번 후벼 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이년동안 하혈이 계속됐다고….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해 오월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80만발.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곳에 남았던 이들.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도청의 문을 꼭 걸어 잠그고 고통을 삼켜야했던 광주. 36년이 흐른 지금, 광주는 어떻게 살아있는가. 작가의 말처럼 우리 사회 곳곳은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가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된 게' 아닌가 싶다.

광주정신을 모독하는 일이 계속된다. 지난 6월 보훈의 달, 국가보훈처는 당시 광주를 짓밟았던 부대의 광주 금남로 시가행진을 계획했다가 취소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도 5.18 광주민중항쟁 기념일마다 불거진다. 시민들에게 총을 쏘라고 명령한 혐의의 전두환은 유족들의 오해가 풀린다면 광주에 가서 돌을 맞겠다는 망발로 광주시민을 모욕한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가기를 바란다"는 동호의 이야기에 우리 사회는 답할 수 있을까? 소설이 픽션이 아니라 역사적 기록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소년이 온다'는 충분히 말해준다. 더 이상 아무도 내 동생을 모독할 수 없도록 제대로 써달라는 동호 형의 부탁은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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