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0세기 추정 건물지·주거지 유물 무더기로 나와

무더기로 발견된 석환.

[중부매일 이보환 기자]단양군 영춘면 하리 온달산성(사적 264호)에서 국내 최대 규모 석환 무더기와 7∼10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지, 주거지, 토기 등 유물이 발견됐다.

(재)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원장 장준식)은 단양군 온달산성 종합정비기본계획에 따라 문화재청으로부터 매장문화재 발굴 허가를 받고 성내 지역과 동쪽 성벽 안쪽, 서쪽 성벽 정비구간에서 발굴작업을 했다.

조사결과 상부 문화층에서는 통일 신라 말~고려초기인 9~10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주거지, 석축, 부석 유구 등이 확인됐다.

주거지에서는 주름 무늬병, 철제 솥뚜껑 등이 나왔다.

하부 문화층에서는 7∼8세기로 추정되는 기와 건물지 기단부와 초석, 석축, 와적층, 주거지 등이 확인됐다.

또 태선문(무늬) 토기, 적색 집선문 기와, 철제 도끼와 화살촉, 저울대편으로 추정되는 유물 등이 출토됐다.

저울대편은 긴 막대형으로 눈금이 새겨져 있어 고대 도량형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쪽 성벽 정비구간 안쪽에서는 석환 무더기, 주거지 등이 확인됐다.

성을 방어하기 위한 무기로 이용된 석환은 크고 둥근 강돌을 성 밖에서 옮겨 온 것으로 추정된다.

석환은 직경이 10~20㎝, 30~50㎝ 정도의 크기로 성벽 안쪽을 따라 곳곳에서 발견됐다.

상부 문화층 주거지

성내에서 확인된 유구는 온달산성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지속적으로 경영됐음을 보여주는 자료로 주목된다.

동쪽과 서쪽 성벽의 구조와 축조양상은 신라 석축산성의 특징을 보여준다.

발굴조사단은 온달산성과 관련해, 고구려 온달과 관련한 축성설화가 전해지는 데다 6세기 후반 신라의 진출기의 특징적인 성벽구조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출토된 철제 유물(위)과 토기.

성내 깊은 곳은 2~3개 층 이상의 문화층이 중층으로 있지만,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상층부 위주로 조사를 했으므로 이와 관련한 유구와 유물은 확인하지 못했다.

장준식 원장은 "철제무기류가 많은 점으로 미뤄 삼국기 각축장으로 실제 전시에 활용된 산성으로 추정된다"며 "석환의 수는 국내 최대규모로 보다 세부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온달산성의 성격을 규명하고, 앞으로 정비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보환/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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