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세평] 이종수 참도깨비도서관

한낮 더위가 사람 잡을 듯 맹렬한 날 장터를 돌며 이야기를 듣는다. 허물을 벗고 나간 매미의 울음이 끓는 나무 그늘에 앉아 듣는 장날 이야기는 장편소설을 읽어주는 것처럼, 반 백 년도 더 지난 그날그날들을 다시 재구성한 것처럼 생생하기만 하다. "왜 그런지 몰라도 마흔 넘어 일은 생각이 나지 않는데 고생고생한 옛날 일들은 토씨 하나 빼지 않고 기억이 난다니까.

" 가마니 공출까지 극심하던 일제강점기 때 면사무소 서기도 아닌 앞잡이 아무개 놈이 신발을 신은 채 방으로 뛰쳐 들어와 채근하던 장면을 설명하는데 그 창귀 같은 사람이 등장할 것만 같다. 숱한 해 혼자 이야기하고 다시 쓸어담고, 다시 방백하면서 재구성해왔던 역사이리라. 장터 한복판에 씨름판을 알리는 징소리가 울리고 동네 씨름꾼이 외지에서 온 씨름꾼에게 뒤집기를 당해 거짓말처럼 그 큰 놈이 뜬 돌처럼 보이던 일이 한편의 서사시 같기만 하다.

여름 매미는 무더위 장터를 뒤집기할 듯 맹렬해지기만 하는데 이야기를 더 재미있는 구석으로 몰려간다. "그럼 소는 외지 장사가 타 갔어요?"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어디, 그럴 수 있나. 그 장사가 정신을 차리고 내리 두 판을 이겨 황소를 타갔지." 민속씨름판 천하장사에게 주어지는 황소 트로피는 아무 것도 아니다. 콧김을 풍풍 쏟는 황소를 바투 쥐고 끌고 가는 장사의 꿈을 꿀 것만 같다. 녹음기에 채록된 것을 다시 쏟아놓으면 이 손바닥만 한 지면을 뚫고 발 디딜 틈 없는 장터로 나올 지도 모를 만큼.

어제는 부강장으로 오늘은 미원장으로, 내일은 내수장으로 이야기 들으러 다니는 장터는 그날의 북적함을 잃었지만 이야기로 살아나는 것만으로도 좋다.

그때가 전성기였을 어르신들 삶의 연륜을 들여다 보며 나의 전성기는 언제였는지 되물어본다. 배고픔과 추위를 참아가며 일가를 이루는 고생바가지 뒤집어쓴 삶이 어디 전성기이냐고 딴죽을 걸기도 하겠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았던 그날들이 전성기가 아니면 무엇일까. 전성기가 있었기에 지금이 있고 그에 걸맞는 연륜과 지혜가 마치 큰 도서관처럼 들어찬 삶을 들어야 할 때이다. 돈과 권력의 변방에서 맨몸으로 이루어낸 역사는 충분히 존경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찬연한 삶을 이념과 정치에서 분리해내고 스스로 대견해하는 주체로서 이 세계와 얽혀 있을 때 더 이상 휘둘리지 않는 삶의 역사가 우리를 기쁘게 할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들을 어머니들을 불러내고 누나들과 언니, 형과 아우들을 장터로 불러내어 국밥 배불리 나눠 먹고 씨름 한판 걸지게 지쳐보며 환호성을 지르는 날을 꿈꿔 본다. 민주주의 광장이 따로 없는, 그날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한분의 도서관이 쓰러지기 전에 기록해두어야 한다. 토씨 하나 빼먹지 않고, 더도 덜도 않는 육성으로 기록하고 연대기로 출간하면 무엇 때문에 왜곡되고 올바르지 못한 역사의 길로 들어섰는지 알게 되리란 혼자만의 생각을 곱씹어 본다.

"보십시오 당신의 삶이 이러 이러하였으니 얼마나 당당하고, 때로는 부끄럽고 이러하여 남을 벌레처럼 여기지 않고 섬겨야만 오롯한 나로 우뚝 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애쓰셨습니다. 그동안 제대로 귀 기울이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렇게 다시 재구성되는 민중의 역사를 보고 싶습니다. 이제 마음 편히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전성기를 다시 만들어보고자 한다. 이 분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지금을 버텨내고 내일에 넘겨줄 때까지가 전성기가 될 것임을 믿으며 한낮의 매미처럼 쓰고 또 쓰고자 한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