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칼럼] 임정기

동아시아에서 전기를 최초로 생산한 나라는 바로 대한제국이다.

지금부터 130여년 전인 1887년 3월 서울 경복궁 건청궁 향원지에서 연못물을 이용해 16W짜리 전등 750개를 켤 수 있는 7kw급 에디슨 다이나모 발전기를 이용해 생산했다고 한다.

최근 35도를 웃도는 폭염이 지속되면서 전기요금 누진제가 도마위에 올랐다.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시민들은 맘껏 에어컨을 켜고 싶어도 전기요금이 겁나 엄두를 못 낸다. 하루 서너 시간 틀 경우 월 5만~6만원이던 전기요금이 누진제로 인해 20∼30만원대로 훌쩍 뛸까 겁난다.

때문에 시민들은 냉장고와 김치냉장고, TV, 전기밥솥, 세탁기 진공청소기 컴퓨터, 휴대전화 충전기, 전기다리미 등 현대사회의 기본 생필품에 여름철 에어컨을 과다하게 사용할 경우 누진제에 따른 전기요금 폭탄을 내심 경계한다.

최근 참다못한 시민들이 주택용에만 적용되는 전기요금 누진제에 문제가 있다며 소송을 냈다. 차일피일 눈치만 보며 미온적이던 정치권도 결국, '전기료 폭탄' 개선에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 어제 주무기관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부자감세를 이유로 들어 누진제 개편은 없다고 밝혔다.

현재 전기요금의 누진 단계는 월 100㎾h 단위로, 1단계(사용량 100㎾h 이하), 2단계(101~200㎾h), 3단계(201~300㎾h), 4단계(301~400㎾h), 5단계(401~500㎾h), 6단계(500㎾h 초과)로 구분된다.

이 같은 전기요금 누진제의 최저구간과 최고구간의 누진율은 11.7배다. 이는 구간이 높아질수록 전기요금을 그만큼 많이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전기요금 누진 체계가 만들어진 것은 1차 석유파동 때인 1974년 오일쇼크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부족한 전기를 절약해 산업용으로 돌려쓰기 위해 누진제를 만들었다. 2차 석유파동 때인 1979년 누진제는 12단계로 나눠 최대와 최저 단계의 가격 차이가 최대 19.7배였으나 2004년 이후 현행 6단계의 누진제로 개편됐다. 누진제는 미국과 일본에서도 시행된다. 그러나 전기요금 차이는 2단계 누진세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1.1배, 일본은 3단계에 1.4배, 대만은 5단계 2.4배 수준이다. 우리나라처럼 11배 이상 차이가 나는 곳은 없다.

올 전력 공급량은 9210만㎾h로 최대 전력수요 8천170만㎾h를 감안해도 예비율(12.7%)은 두자릿수를 지킬 수 있다. 그만큼 과거와 달리 전력공급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 서민들이 매년 전기요금 폭탄을 우려하는 사이 한전은 지난해 11조3천467억원이나 되는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는 전년동기대비 96.1% 급증한 것으로 올 상반기에만 6조3천9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고 한다. 물론, 막대한 영업이익은 국민들로부터 거둬들인 전기요금이 대부분이다.

이런 가운데 한전은 누진세로 외유성 해외연수를 진행해 원성을 사고있다. 한전은 7박 8일 일정의 '글로벌 메가 트렌드 현장 교육'이라는 프로그램을 마련, 7월 말부터 이달 말까지 100여명을 샌프란시스코로 보낸다고 한다. 총 비용은 9억원에 달하며 직원 1인당 900만원이 든다. 물론, 한전은 외유성이 아닌 해외 교육연수라고 하지만 누진제를 통해 얻은 이득으로 직원들의 외유성 연수를 진행한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정치권의 누진제 제도개선 논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새누리당은 산업통상자원부를 상대로 전기료 폭탄에 대한 대안 마련에 나섰고 더불어민주당은 TF팀을 구성했다. 폭염에 마음 놓고 에어컨 조차 마음껏 틀지 못하는 시민들의 불만이 정치권을 움직인 것이다.

전문가들도 정부의 논리에 어폐가 있다며 누진제 개편에 동조하고 있다. 정부가 전력대란이나 부자감세 등을 이유로 누진제 개편이 어렵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소 지나친 해석이라는 것이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제도는 개선돼야 한다.

열대야에 잠 못드는 밤. 전기요금 폭탄 때문에 더 열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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