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변광섭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창조경제팀장

알제리의 해안도시 오랑. 의사 베르나르 리외는 진찰실을 나서다가 죽어있는 쥐 한 마리를 발견한다. 그날 저녁 집안, 지하실, 창고, 수챗구멍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수많은 쥐들을 발견하게 되고 고요했던 도시는 불과 며칠 만에 지옥의 도시가 된다. 정부는 최악의 전염병 '페스트(흑사병)'를 선포하고 도시 전체를 봉쇄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재앙을 받아들여야 했다. 의사 리외는 '보건대'를 조직해 페스트와 맞서 싸운다. 체념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라며 질병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찾아가 치료하고 전염병 퇴출에 사활을 걸었다. 반면에 파눌루 신부는 악인들을 응징하기 위한 하늘의 뜻이라며 현실에 순응한다. 취재차 방문한 신문기자 랑베르는 지옥같은 도시를 하루라도 빨리 탈출하고 싶었지만 자신만이 행복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페스트에 저항하기 시작한다.

리외의 동료 타루는 몸과 마음을 다해 위기 극복에 힘을 쏟는다. 그는 이방인이었지만 누구보다도 암담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지옥같은 1년이 지나고 평화가 찾아왔다. 마흔 넷의 젊은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는 단순한 전염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전염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위기를 타계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무엇인지, 그리하여 우리의 삶 속에 내재돼 있는 저마다의 페스트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고 있다.

페스트는 비극적인 인간의 한계상황과 부조리한 삶을 상징한다. 그리고 부조리한 현실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지를 다양한 시선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묵묵히 저항하고 맞서 싸울 것을, 행복에 대한 의지를 저버리지 말 것을 웅변하고 있다. 알베르 카뮈는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타루는 "사람들은 저마다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페스트는 시련과 극복의 과정이며 자기성찰이자 새로운 변화를 이끄는 도전이다.

크리에이터 이어령 선생과 함께할 때마다 당신의 펄떡이는 지식과 지혜와 열정과 창조의 메시지 앞에서 나는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 것인지 긴장케 한다. "가슴 뛰는 일을 하라. 에디슨이 되지 말고 테슬라가 되어라. 레고처럼 창조와 융합의 가치를 살려라. 알파고의 인공지능을 전쟁에 사용하면 재앙이 될 것이고 문화에 사용하면 삶이 아름다워질 것이다" 등의 메시지는 방황하는 내게 매서운 채찍이 되었다.

칼은 불의 단련 속에서 강해지고, 사람은 시련과 역경 속에서 더욱 강건해진다. 빙상경기는 코너를 돌 때 승부가 결정된다. 한국의 모든 도시는 지금 도약이냐 좌절이냐 절체절명의 기로에 서 있다. 훌륭한 지도자는 훌륭한 시민이 만든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일상은 혼란스럽다. 미래를 보는 혜안이 있는지, 국가와 민족과 지역의 발전을 위해 가슴 뛰는 일을 하는지, 공동체적 가치와 정의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올 여름은 질기고 더디다. 견디는 것도 한계가 있지, 번잡한 이 도시를 탈출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영동 도마령의 산골문화축제와 강원도 정선의 산상음악회를 다녀왔다. 그곳에서 자연을 닮아가기 위한 인간의 염원을 춤과 노래와 퍼포먼스와 불꽃쇼 등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수많은 별을 보았다. 반짝이며 속삭이며 한 곳으로 가고 있었다.

인류 역사상 위대한 예술은 현실에 대한 저항에서 탄생되었다. 남들이 일상을 순응하고 자족하거나 체념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저항의 깃발을 들고 피를 토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었다. 문화현장은 더욱 그러하다. 청주가 위대한 도시로 발전하려면 저마다의 페스트에 저항해야 한다. 아픔을 이겨낼 수 있는 도전과 창조정신이 필요하다. 그 아픔이 위대한 성장통이 될 수 있도록 참여와 협력의 가치도 함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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