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실장·대기자

올 여름 사람들은 진정한 더위를 맛보고 있다. 폭염에 세워놓은 승용차 유리가 파손될 정도면 이번 더위가 얼마나 무지막지한지 실감할 수 있다. 주말에 에어컨이 빵빵한 영화관과 도서관, 대형마트는 인산인해다. 내가 주로 선택하는 곳은 도서관이다. 조용하고 쾌적한 공간에서 추리소설을 손에 들으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하지만 요즘 추리소설 못지않게 흠뻑 빠져든 스토리가 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의혹사건이다. 우 수석은 고구마 줄기처럼 파내면 파낼수록 새로운 혐의가 드러났다. 하지만 언론의 전방위적인 '우병우 죽이기'에 청와대와 우 수석은 꿈쩍도 않고 있다. 여기에 이석우 특별감찰관의 감찰내용 언론유출 논란이 추가됐다. 음모론까지 불거져 의혹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전망이다. 우 수석 의혹사건은 내용을 깊이 파고들수록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반전과 스릴로 명작 추리소설은 뒷전이 됐다.

이번 우병우 의혹은 주목을 끌 수 있는 흥행요소가 중첩(重疊)돼 있다. 우 수석부터 흥미로운 이력의 주인공이다. 서울대법대 재학 중인 만 20세에 사법시험을 패스한 '소년등과'의 모델이다. 특수부, 중수부를 거친 엘리트검사가 처가 복이 있는 것은 흔한 일이다. 토건업으로 재력을 쌓은 딸부자 집에 장가가서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았다. 신고된 재산이 393억 원으로 최근 2년 연속 정부 고위공직자 가운데 재산 랭킹 1위였다. 소위 0.1% 스펙이다. 특히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했고, 형인 노건평씨를 구속한 '독종검사'로 소문났다.

박근혜 정부에서 주요 공직자 인사검증과 공직기강 감찰을 동시에 주무르는 실세 보직인 민정수석이 된 것은 그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돈과 권력'을 한손에 쥔 인물이다 보니 일거수일투족에 시선이 집중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겐 너무 많은 흠결이 있다. 특별감찰관이 우 수석의 직권남용과 횡령혐의를 수사하라고 검찰에 요청한 것을 보면 혐의를 가볍게 봐선 안된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외려 감찰내용 유출을 구실로 '국기를 문란시켰다'며 이석우 특감에 칼날을 겨누고 있다.

손가락은 달을 가르키는데 손가락만 바라보고 있는 격이다. 이런 우 수석에게 박대통령은 오히려 "의로운 일에는 비난을 피해가지 말고 고난을 벗 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가기 바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우 수석에 대한 믿음은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

청와대가 이번 사건에 대응하는 방식은 2년전 정윤회 문건유출파동을 연상시킨다. 이 사건이 정국을 강타하자 당시 민정비서관이었던 우 수석은 내부회의에서 문건내용의 진위를 무시하고 문건유출경로에 초점을 맞추자고 건의했다고 한다. 물 타기 전략이다. 문건 진위 이슈로 가면 청와대가 늪에 빠지기 때문에 유출 이슈로 전환해 관련자들을 몰아세워야 청와대가 산다는 논리다.

물론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감찰내용 유출은 사실여부를 예단하기 힘들다. 하지만 왠지 범죄스릴러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절대 권력의 벽에 막혀 수사에 한계에 부딪친 수사관이 언론에 터트리는 방식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는 기자에게 "경찰에 자료를 달라고 하면 하늘을 보고 딴소리를 한다"며 "민정에서 목을 비틀어놨는지 꼼짝도 못한다"고 말했다.

감찰과정에서 사방에서 조여 오는 보이지 않는 손 때문에 절망했을 것이다. 특별감찰관은 수사권이 없지만, 감찰 결과를 토대로 검찰 고발이나, 수사 의뢰를 할 수 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해도 진실 규명에는 한계가 있다. 검찰수사가 유야무야 끝난다면 외려 우 수석은 면제부를 받을 수도 있다.

대통령 직속인 특별감찰관은 대통령 친인척·청와대 수석비서관급 이상의 비위를 조사하기위해 지난 2014년에 도입됐다. 하지만 특별감찰관이 힘을 쓰지 못해 언론플레이까지 할 정도면 이 제도가 대통령 측근의 권력형 비리에 메스를 가할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한 생각이다.

우 수석 의혹사건은 회를 거듭할수록 흥미진진하지만 한편으론 씁쓸하다. 언론의 '우병우 죽이기'를 음모론적인 시각에서 보는 측도 있다. 당사자는 억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혹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 청와대의 핵심위치에 앉아 사안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우 수석 의혹으로 한창 언론의 십자포화를 맞을 때 휴가를 맞아 울산 대왕암공원을 찾았다.

대왕암은 신라 문무대왕의 왕비가 죽어서도 호국룡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하여 바위섬 아래에 묻혔다는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권말기 증세에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많다. 청와대의 '우병우 구하기'를 보면 국민과의 불통(不通)이 불치병(不治病)이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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