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톡톡톡] '공무원 동화작가' 증평군청 권영이 문화체육과장

증평 보강천.

증평군을 동서로 가로질러 흐르는 보강천은 증평에 살고 있거나 거쳐간 사람들의 애환과 추억이 깃든 곳이다. 어린 시절 발가벗고 물장구 치던 곳이었고, 아낙네들의 빨래터로 증평 소식이 모였다 퍼져나가는 삶의 중심지였던 보강천을 주민들은 증평의 젖줄이라고 말한다.

보강천에는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서른 살을 훌쩍 넘긴 미루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철마다 제철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 주민들의 쉼터로 사랑을 받고 있다. 밤에는 태양광 조명이 보강천 산책길을 비추고 있어 판타지 동화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들게 든다.

권영이(57) 문화체육과장

몇년 전부터 보강천에 수달이 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증평군청에 근무하는 권영이(57) 문화체육과장은 수심이 깊지 않은 보강천에 수달이 살고 있다는 것이 의아해서 소문의 근원을 찾다가 혼자 웃고 말았다고 한다.

바로 그 소문은 자신의 첫 작품인 그림동화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는 보강천에서 물장구 치고, 피라미를 놀리고, 오리궁둥이를 찌르는 개구쟁이 수달을 볼 수 있다는 상상을 하면 행복해진다고 한다.

권 작가는 2008년에 증평군 직원들의 행정혁신 활동에 관한 홍보용 책자를 제작하면서 어떻게 하면 관공서의 냄새가 나지 않게 만들까 고민하다가 쉽고 재미있는 우화동화 형식으로 짓기로 했다.

그래서 증평군 홍보용 책자는 오염된 도시의 하천에 살던 수달가족이 맑고 아름다운 보강천으로 이사 와서 보강천에 사는 수달들과 삶의 방식을 혁신하는 장편동화로 제작됐다.

마침 이 홍보동화는 이순원 소설가의 눈에 띄었으며, 이후 이 작가의 추천으로 2010년 그림동화 '수달에게 친구가 생겼어요'로 개작해 출간됐다.

그때부터 동화는 권 작가에게 삶의 일부가 됐다. 권 작가는 "어린이의 눈 높이에 맞춰 써야 하는 동화는 소설이나 수필을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렵지만 동화를 쓰는 과정에서의 행복감은 다른 장르에 비할 바가 아니다"고 말했다.

권영이 작가의 그림동화 '수달에게 친구가 생겼어요'

그는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동화의 매력"이라며 동화 사랑에 푹 빠졌다.

특히 "주변에 있는 자연이나 사물이 말하는 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늘 귀를 기울이다 보니 지역에 많은 애착을 갖게 되었다"며 증평 사랑에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권 작가의 '증평 사랑'은 작품 구석구석에 깊게 배어 있다. 이미 발표된 작품뿐 아니라 발표를 준비하는 작품, 습작품까지 모두 증평을 배경으로 썼다고 한다.

2009년 제21회 신라문학대상을 받은 단편소설 '틈'의 배경도 증평이며, 제 18회 눈높이 아동문학대전에서 당선된 장편동화 '너 그거 아니'에도 두타산과 보강천, 증평초등학교가 나온다. 지금 출간을 준비중인 저학년 장편동화 '능서의 배려'도 도안초등학교가 배경이다.

증평읍 송산리에 살고 있는 권씨는 "어릴 적부터 시골에서 강아지도 키우고, 갖가지 과일나무를 심어 철마다 따먹는 상상을 해 왔는데 그 꿈을 이루게 해준 증평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쓸 모든 작품도 증평을 배경으로 쓰겠다"고 말했다.

권 작가는 지난해 장편동화 '손자병법 놀이'로 뒷목문학회와 동양일보가 주관한 제10회 충북여성문학상을 수상했다. 물론 이 작품의 배경도 증평이다.

이렇듯 지역에 애착이 많은 권씨는 "요즘은 행정에도 감성이 중요시돼 업무를 수행하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작품에 참고하기도 하고, 창작 과정에 얻은 아이디어를 업무에 활용하기도 한다"며 "행정도 창작과 다를 바 없다"고 강조했다.

그가 쓴 '수달에게 친구가 생겼어요'를 읽다 보면 개구쟁이 수달이 오리 궁둥이를 찌르며 장난치는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여기 작품의 일부를 소개하면서 아름다운 보강천을 상상해 본다. / 한기현

수달에게 친구가 생겼어요.
자르륵자르륵
시냇물이 자갈에 부딪히며 흘러가요.
꼬마수달이 물속에서 살금살금 나와서
놀고 있는 오리 궁둥이를 찔러요.
엄마 오리가 뒤뚱거리며 도망가고
아기 오리들이 되똥거리며 따라가요.
자르륵자르륵
시냇물이 자갈에 부딪히며 흘러가요.
뒤뚱뒤뚱
오리는 오리끼리 놀고
파닥파닥
피라미는 피라미끼리 놀아요.
아무도 장난꾸러기 수달하고 놀아주지 않아요.
푸우푸우
수달은 심심해서 물위로 고개를 내밀고 하품만
해요.
촐랑촐랑
분홍슬리퍼를 신은 여자아이가 다리로 뛰어와요.
얼굴이 달님보다 더 뽀얗고
오목한 보조개가 예쁜 아이예요.
수달이 얼른 다리 아래로 숨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자 아이를 지켜봐요.
여자아이가 다리에 앉아서 두다리를 흔들면서
흥얼흥얼 콧노래를 불러요.
분홍 슬리퍼가 벗겨질 것처럼 아슬아슬해요.
파닥파닥
다리 아래에서 피라미들이 떼 지어 놀아요.
자르륵자르륵
여자아이 목소리가 시냇물소리에 섞여 흘러가요.

---- 중략 ------

"우리, 내일 또 같이 놀자"
슬비가 환한 얼굴로 말한 다음
촐랑촐랑 집을 향해 뛰어가요.
수달은 슬비가 한 말을 자꾸자꾸 따라 해봐요.
우리, 내일 또 같이 놀자.
우리, 내일 또 같이 놀자.

키워드

#톡톡톡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