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혀] 대학·출신으로 판단하는 씁쓸한 세상의 논리

# 몇 년전, 지역의 기관장 되시는 분이 저녁식사 초대 전화를 하셨다. 갑자기 공돈이 생겼다고 부담없이 나오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충대 나오셨죠? 그럼 동문들이라 편할 거에요."

"충대 나와야 갈 수 있는 자리에요? 저는 대학을 안 나왔어요."

일순 정적이 흘렸다. 이때 충대를 안나온 것이 미안해진다. 상대에 아차 싶어 말문이 막히는 그 순간, 침묵에 무수한 말들이 얽히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며칠 전, 지역의 신문사 사장 초대로 식사를 겸한 술자리가 있었다. 나와 자리를 같이한 선배는 20대부터 시민운동을 필두로 여성운동과 조합운동을 열심히 해왔던 사람이다. 그 자리에서 우리를 초대한 사람이 나는 당연히 충대를 나왔다고 단정하면서 선배에게 "충대의 오드리헵번이었나요?" 라며 너스레를 떠는 농을 던졌다. 순간 나는 이를 어쩌나 싶어 "저는 충대가 아니라 방송대 다녔어요"라고 정정했고 선배는 에둘러 충대를 나오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자신이 고졸이라는 것은 굳이 밝히지 않았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과 대화할 때 관문처럼 어느 대학 출신이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움츠러든다. 그들이 당연히 그럴거라고 믿었던 '정상적인' 대학이 아닌 방송대를 나온 나는 상대가 민망해할까봐 오그라든다. 이런 상황은 내가 '똑똑한 여자'라고 인정받는 것이라고 위안을 삼기에는 씁쓸한 뒷맛만을 남긴다.

자기 경력과 삶을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잣대를 들이대는 일들은 최근 '여성혐오'와 관련한 '메갈리안' 논쟁에서 그 정점을 찍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남자들은 우리 사회의 젠더체계 속에서 자신들이 누려온 기득권이 무엇인지 모른다. '당연한 것'을 왜 구태여 고민하며 머리를 흐트리고 싶겠는가?

여성들은 엘리베이터에 낯선 남성이 타면 본능적으로 몸이 긴장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발걸음 소리가 늦은 밤 뒤에서 들려오면 그때부터 집에 도착해 문을 잠그기까지 긴장사태를 해제할 수가 없다. 긴장되는 몸의 경험을 하지 못한 이들은 지나친 피해의식이라고 단칼에 정리할 수도 있겠다.

페이스북에서 발화해 여성권리찾기를 '미러링'이라는 작업으로 당차게 일을 벌인 메갈리언(이하 '메갈'이라 칭한다)이 있다. 입장을 바꾸어 역설을 드러내는 메갈의 작업들이 그렇게나 호들갑을 떨며 '남성혐오'라고 발끈해야 할 사안인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풍자와 해학은 약자들의 표현수단이며 절대적으로 필요한 행위다. 이에 기반한 메갈들의 행위는 남성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권력이 얼마나 절대적인가를 역으로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은 "아니 충대를 안 나오셨어요? 왜요?"라고 묻는 후안무치만큼이나 어리석게 느껴진다. 내가 충대를 나왔다고 모두가 충대를 나왔다고 예단하는 어리석음과 내(남성)가 당하지 않았다고 너(여성)도 당하지 않은 것이라고 결론을 내는 이상한 논리는 우리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를 거울처럼 보여주는 사례다.

가부장제가 여전히 공고한 사회에 사는 우리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가부장적 사고를 전승한다. 여성들이 자기의 위치성을 자각하고, 그것이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불평등위에 서 있다고 다양한 층위를 분석해내는 지금, 그래서 남성들은 지극히 혼란을 느끼는 모양이다. 그들이 이성을 팽개치고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은 아마도 그들의 세상에서는 흔들릴 수 없는 절대권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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