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피 폴폴 내리기 시작하던 눈방울이 점차 굵어지더니 급기야는 하늘과 땅을 분별할 수없이 은백의 장관으로 수놓으며 까무룩 저물어 간다.
 초등학교 시절 책보를 메고서도 단참에 오가던 오리 숲길이 오늘따라 빈 몸으로 걷는데도 왜 이처럼 멀게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눈 내린 아침. 노루, 토끼 발자국이 듬성한 등교 길에 오르면 우린 흰 입김을 후후내어 언 손을 녹이며 발걸음을 재촉하곤 했다. 기막힌 설경 속에 눈 들어 산을 보면 소나무 가지 위에 다보록 쌓인 눈의 중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부러진 나뭇가지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던걸 흔히 보아 오며 살았다. 그땐 으레 눈이 많이 왔으니 그러려니 여겨졌다.
 새해가 시작된 지 사나흘이 훌쩍 지냈건만 별 거창한 계획도 꿈도 마무르지 못한 채 느즈막이 여행길에 오른 달팽이처럼 꾸무럭대다가 아득한 꿈길을 가듯 쌀 서너 말을 새끼줄로 묶어 메고 걷던 오솔길을 새해벽두에 터벅터벅 걸어본다. 귓볼에 시린 바람을 옴팍 떠 앉고서 말이다. 그래, 한낱 나무도 밑둥부터 우듬지에 이르기까지 제 몸 상치 않으려고 결국은 스스로 가지치기를 했던 거였구나.
 저 수북히 가지에 쌓인 흰눈이 세상을 살며 내가 부풀리고 지니고자 하였던 탐욕이었음을 비로소 반백이 된 지천명을 훌쩍 넘기고서야 아둔하게 뉘우치듯 깨닫게 하다니..... 나무와 사람과의 유전자가 70∼80%나 유사하다는 방송 멘트가 고고한 설원을 허허롭게 허비고 있는 내 귓가에 이명(耳鳴)으로 들려온다.
 행여 곤궁한 내 일상 속에 그 무엇하나 푸달지게 뉘게 나눠줄 게 있으랴만 둘을 주고 하나를 받지 못하더라도 서운해하지 말자. 아니 그 하나마저도 받지 못한들 또 어떠랴. 다만 그 둘의 의미가 왜곡되어지지만 않는다면, 번제의 제물로 드려지는 연약한 한 마리 양처럼 마지막 한 방울의 기름까지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소진하며 살고 싶다. 그래, 올핸 버릴 일이다.
 저 백색의 눈송이 속에 따가새만한 권력과 욕심 모두를...... 그래서 얼음장 밑 속 비운 공어처럼 투명해 지리라. / 충일중학교 행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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