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도 없는 하늘에 별빛 고운 산길을 네 시간 가까이 올랐나보다. 태양을 잉태한 대지의 용트림은 진작에 시작되었다. 고개를 들어 이마의 높이쯤에 있는 대야산 정상 위로 이제 곧 솟아오를 햇덩이를 맞으려는 듯 잔뜩 긴장한 청보라빛 하늘이 서서히 열리고 새해 첫날의 시퍼런 미명이 거의 수직이다 싶은 정상을 향해 가파른 산길을 기어오르는 등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었다.
 빙판이 되어버린 계곡을 몇 번인가 가로질러 산을 오르며 앞서 걷던 학생들의 운동화에서 자꾸 벗겨져 나가는 아이젠을 주워 주인을 찾아 고쳐 매주고 하는 동안 예상했던 시간을 많이 소모하기는 하였다. 잡힐 듯 가까운 정상은 아직 저만큼 먼데 누군가의 "해 떴다떿求?외침이 들려왔다.
 눈 쌓인 가파른 산길을 새해 첫날의 일출을 보려는 일념으로 앞사람 엉덩이에 이마가 박히는 줄도 모르고 총총히 오르는 길, 배낭을 걸머진 몸을 돌리기조차 옹색한 비탈에서 겨우 몸을 돌려세운 순간 호흡은 정지되고 머리끝이 송연한 채 하마터면 그대로 붉은 햇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착각에 부르르 몸이 떨렸다.
 겨울 나무 사이로 삼각대를 설치하고 카메라를 장착하고 렌즈를 조절하는 시간은 한없이 더디게 느껴졌고 그러는 사이 2003년 첫날의 해는 붉은 기운을 쏟으며 울컥울컥 솟아올랐다. 한달음에 정상으로 달려 올라가 붉은 해를 고스란히 받아 안고 싶은 강한 충동과는 달리 두 다리는 그 자리에 못이 박힌 듯 움직여지지 않는다.
 다만 가슴 가득 차 오르는 생각, 생각들. 내가 잘못한 이여. 나를 용서해주길. 내게 잘못한 이여. 이제는 마음의 고통에서 걸어나와 저 해처럼 순정해지길. 세상의 하늘빛이 지금처럼만 맑기를, 그리고 세상의 산들이 더 이상 인간에게 훼손 당하지 않기를 빌었다. 오늘의 해라고 어제와 다를 바 없고 내일의 해와 다를 것도 없을 터였다. 그러나 한 해가 가고 오는 교차점에서 지나간 일년을 반성하고 다시 채워나갈 일년이라는 시간에, 좀 더 인간답기에 근접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그렇게 기도로 바치는 것이다. / 환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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