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김호일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사무총장

김호일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사무총장

필자는 우여곡절(迂餘曲折)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가장먼저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란 시가 생각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살인적 더위의 이번 여름날씨도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또 한 번의 우여곡절을 경험하게 하였으리라. 제법 아침저녁 찬바람이 불어 이제 또 지나간 여름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 뻔하고 여름 내내 소나무 밤나무에 매달린 잎들이 가지를 떠날 채비를 서두를 것이다.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던 소매긴 옷들을 다시 찾을 것이다.

청주에는 살인적인 더위라 불리던 7월과 8월에도 수많은 문화행사들이 있었다. '썸머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야외공연과 '포도축제' '민들레축제' '오디축제' '찰옥수수축제' '복숭아 축제' '한여름 밤의 콘서트'까지 나름대로 멋진 행사들이 있었다.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1회성 행사들이 습관처럼 벌어진다.

가을에는 더 많은 크고 작은 국제행사에서부터 지역행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반갑고 기쁜 일이다. 필자는 여기서 한 가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청주의 행사는 진정으로 '메이드인 청주'인가? 청주이기 때문에 만들어진 축제이며 행사이며 자랑거리인가를 묻고 싶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은 물론 멀리 유럽의 지역 축제들도 지역의 소도시 이름을 걸고 축제를 만들어간다. 축제의 역사는 그 지역의 대표 관광 상품이 되고 지역의 문화콘텐츠로 자리 잡는다.

대표적으로 지금까지 아홉 번이나 열린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는 진정으로 '메이드인 청주'인가? 아니면 행사가 열린 '장소만 청주'이진 않았는가를 자문해 본다. 내년에 열리게 될 '제10회 청주공예비엔날레'는 달라도 많이 달라져야한다. 우리나라 도시 여기저기 열리는 여타 비엔날레와 차별은 물론, 진정으로 세계무대에서 눈여겨보는 청주만의 '메이드인 청주' 비엔날레로 태어나야만 한다. 행사운영의 방식에서, 조직위원회와 기획운영위원회의 구성에서, 외부감독들만의 노하우와 기획아이디어로 채워지는 현실로는 '메이드인 청주'가 없다.

문화의 바다에도 풍랑이 있고 폭풍이 있다. 역사문화 일번지로 알려진 경주도 방문객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으며, 관광객들의 지역문화 이용패턴도 변했다. 경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80%를 차지하던 중국과 일본관광객들은 예전과는 달리 경주에서 숙박하지 않는다. 부산에 머물면서 경주는 당일 관광지로 지나친다.

제주도도 신혼여행의 메카에서 중고생 수학여행지와 저소비 중국인 단체관광지로 변해버려 씀씀이가 예전만 못하다. 이들 지역 모두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볼거리가 없다는 관광객들의 푸념은 과장된 것이 아니다. 지역문화의 장수 비결은 무엇인가? '지역스러움'과 '독창성'이다. 지역문화도 세월이 지나면 늙는다. 성숙기를 지나면 쇠퇴기에 접어든다. 지역문화가 장수하는 첫째 조건은 과감한 변신이다. 변화하는 관람객의 요구에 맞춰 콘텐츠와 인프라를 개발하는 자기변신을 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십상이다.

1955년 개장한 디즈니랜드는 개장 이래 아직까지도 공사가 진행 중에 있으며, 공사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일상화된 변화와 융합과 진화만이 장수 비결이다. 생물의 진화과정에도 강한 자도 똑똑한 자도 아닌 '변화에 민감한 자'가 유리한 것처럼 지역문화나 행사를 운영하는 기업도 관객의 요구변화에 대한 즉각적인 적응만이 1회성 행사에서 탈피하여 지역경제의 원동력이 되고 도시를 살리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문화산업은 특히 사회 현실적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문화 수요에 직접적 영향과 변화를 주는 주요변수는 여가시간과 소득, 그리고 접근성이다. 주5일 근무제와 고속도로의 연이은 확장 개통은 지역문화 수요의 '광역 확대' 현상을 가져와 관광지와 여행상품 개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미 오래전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되었지만 모든 관광지나 여행문화상품이 성장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기회의 확장은 동시에 경쟁의 심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고생 끝에 낙(樂)이 있다. 문화는 낙이다. '문화적 우여곡절'을 거치자. 이리 굽고 저리 굽은 온갖 복잡한 사정으로 변화를 겪는 과정을 거쳐 진정한 청주문화를 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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