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변광섭 청주시 문화산업진흥재단 창조경제팀장

변광섭 청주시 문화산업진흥재단 창조경제팀장

새벽에 출발해 해질녘이 돼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일본 니가타는 내게 특별한 곳이다. 지난해부터 겨울과 봄과 여름이라는 계절의 순환을 온 몸으로 부대끼며 사유의 시간을 가져다 준 곳이다.

오늘은 니가타의 황금들녘과 푸른하늘, 반짝이는 호수와 갈바람이 마중 나왔다. 여행은 언제나 낯선 설렘과 새로운 시선과 인식의 확장을 가져다 준다.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설국>에서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하얀 눈의 나라가 펼쳐졌다"며 니가타의 겨울을 예찬했는데 우리 일행은 끝없이 펼쳐진 황금빛 물결을 보며 이곳이 풍요의 고장임을 알 수 있었다. 니가타는 계절마다 각기 다른 멋과 맛과 향기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이번 니가타 방문은 한일한가위축제를 통해 청주의 3대 콘텐츠를 선보이기 위해서다. 충북도무형문화재 1호인 청주농악, 청주삼겹살, 생명문화의 상징인 청주젓가락을 알리고 일본인들의 가슴에 한류의 가치를 심어주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달려온 것이다. 드라마나 노래 중심으로 편중돼 있는 한류시장에 청주의 콘텐츠가 설득력 있을지 걱정부터 앞섰지만 그 결과는 놀라울 정도였다.

이틀 동안 5만 여 명의 일본인들이 행사장을 방문했는데 청주의 콘텐츠가 최고 인기를 얻었다. 삼겹살 굽는 냄새가 나자마다 사람들이 불판 앞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주홍빛 삼겹살을 간장소스에 담근 뒤 불판에 올려놓고 노릇노릇해지면 파절이 소스, 김치와 함께 상추에 싸서 먹을 수 있도록 했다. 고소한 냄새, 쏟아지는 육즙, 상큼하고 달달한 맛….

여기에 소주 한 잔 곁들이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진미'에 홀딱 반한다. 이들의 입에서는 "오이시이데스요(맛있어요)"가 절로 흘러나온다.

청주농악은 한국인의 한과 얼을 신명으로 풀이한 두레놀이다. 우리 민족의 고단함을 농악을 통해 달래고 희망의 노래를 부르며 공동체의 가치를 만들어가지 않았던가. 일부는 한국의 문화원형이 고루하다며 터부시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자연을 품고 아픔을 견디며 새로운 희망을 담아왔다. 공예, 한옥, 농악 등 우리의 문화원형 모두 그러하지 않던가.

청주농악은 한가위축제의 개막식에서부터 폐막식까지 4차례 공연이 이어졌다. 행사장을 축제의 장, 흥겨움의 장, 화합의 장으로 만든 최고의 공연이라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청주젓가락은 문의 마불갤러리의 이종국 작가가 전통 한지와 함께 준비했다. 가볍고 부드러우면 단단한 산초나무로 만들었는데 실용성은 물론이고 항독·항균 기능까지 하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여기에 전통한지 작품까지 곁들였기 때문에 모두들 놀라운 표정이었다. 이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한지도, 젓가락도 모두 한국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리하여 자신들의 문화유전자 속에는 한국의 장인정신이 심연처럼 뿌리 깊게 간직하고 있음을 말이다.

여행의 백미는 우연성이다. 니가타시의회 의장이 청주시 방문단 모두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좁고 허름한 집에서 직접 요리한 음식을 대접한 것인데 이 가당찮은 초대에 우리 일행은 즐거운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20년 전 부인과 사별한 뒤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시작한 요리였는데 음식으로 한국과 일본이 하나 될 수 있다는 기쁨에 밤잠 설치며 준비했다는 당신의 소박한 실천이 고마울 뿐이다.

니가타 총영사관저에서의 낯선 체험도 감동으로 다가온다. 한국에서 온 공연팀 모두가 참여한 조촐한 파티를 여는 자리였는데 니가타시 시장과 시의장 모두 끝까지 자리를 함께하면서 양국의 우정을 나누었다. 조건희 총영사는 "지난해 청주시가 일본에서 펼친 동아시아문화도시 사업을 지켜보면서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던 중 한가위축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진정한 애국이 무엇인지 고민케 하는 메시지다. 내 무의식의 살결이 요동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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