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제천시(왼쪽)와 제천시의회 로고.

최근 충북 제천시 국장급 공무원이 술자리에서 조례안 개정안 찬성요구를 거절했다며 시의원을 폭행한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국장과 시의원은 주변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몸싸움을 벌였고, 구타를 당한 시의원은 각막을 다쳐 실명 위기에 놓였다. 해당 국장도 뇌진탕 증세를 보여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얼핏 보면 단순 폭행사건 같지만 지방자치단체의 고질적인 병폐와 시대에 뒤떨어진 일부 공무원의 후진적인 사고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향후 사업전망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비지원에만 혈안이 된 지자체, 의회와 시청사가 아닌 술자리에서 시의원에게 조례안 개정안 찬성을 강요하는 공직자, 공공장소에서 싸움질하는 함량미달의 시의원과 공무원은 여전히 낙후된 풀뿌리민주주의의 씁쓸한 자화상이다.

이번 조례안 개정의 대상인 제천스토리창작 클러스터사업은 청풍면 교리의 건축면적 6천194㎡에 드라마, 영화, 신인 문학작가 및 지망생의 집필 공간을 제공하기위해 호텔식 오피스텔과 교육·연수·공연시설 등을 조성하는 사업으로 사업비 229억원(국비 50%, 도·시비 50%)이 투자돼 내년에 준공될 예정이었다. 당초 최초 사업자로 낙점된 청주시가 사업을 반납했다. 연간 운영비 부담이 너무 커 실익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용역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창작·집필시설 연간 운영비가 25억원 이상에 달해 시에 큰 재정부담을 줄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반면 제천시는 시의회에 제출한 자체 사업계획서를 통해 연간 운영비를 6억2천여만원으로 추산하면서 연간 5천400여만원의 경영수익을 낼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연구기관과 시(市)의 시각은 천지차이였다. 시의회가 이미 투자된 용역비(3억원)와 실시설계비(약 5억원) 등 10억 원 이상의 매몰비용에도 불구하고 스토리창작 클러스터사업을 접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은 이 때문이다.

국내 첫 스토리창작 클러스터 구축을 통해 지역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지역 문화예술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제천시의 계획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의회의 기능은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다. 사안에 따라서는 당연히 제동을 걸 수 있다. 전문연구기관도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국비지원에 연연해 수백억 원의 국비와 지방비가 투입된 대규모 시설이 밑 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혈세만 잡아먹는 '애물단지'가 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것인가.

국장급 간부의 자세도 틀렸다. 제천시는 개정안을 오는 27일로 예정된 본회의에 수정 상정해 원안대로 통과시키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의원들을 상대로 서명을 받으려면 음식점이나 술집에서 향응을 베풀 생각을 하지 말고 의회를 방문해 시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설득했어야 했다. 김영란법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일부 공무원들의 행태는 전혀 바뀌지 않고 있다.

더구나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는다고 공공장소에서 시의원을 폭행한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될 수 없는 일이다. 폭력과 강압으로 조례를 개정하겠다는 공직자의 발상이 놀랍다.

이런 식이라면 제천시의 발전은 요원하다. 제천시와 시의회는 이번 사건을 통해 지역의 미래와 지방자치의 소중한 의미, 그리고 공직자의 자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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