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민정 수필가

김민정 수필가

친구의 친구 집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0시가 넘어서였다. 한여름밤의 어둠은 산골의 자연과 정취마저 감추었고 밤 벌레와 모기만이 불빛을 찾아 극성이었다. 전남 고흥에서의 첫날, 산새소리에 눈을 떴다. 고택을 둘러싼 대나무숲 때문인지 방안까지 대나무향이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그녀부부는 지은 지 100년 넘은 초가삼간을 빌려 새우 양식하는 동안 이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이곳은 바닷가 끝 마을 첩첩 산중이었다. 울퉁불퉁한 마루 끝에 서니 눈부신 아침햇살 아래 저 멀리 새우양식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바다 양식장에서 나룻배를 타고 그녀의 남편이 새우 밥을 주느라 분주해 보였다.

질곡의 세월을 넘기고 형태만 남아 있는 집에는 부엌과 마루, 안방과 웃방 사이에 나무로 된 미닫이문이 있었다. 목문으로 연결된 문지방에 미닫이문은 열 때 마다 끼이익 소리까지 났다. 고풍스럽기는 했지만 음산한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이 미닫이문이 반가웠던 것은 문지방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 문지방에 올라서는 것을 좋아했다. 문설주에 기대어 바깥마당과 아랫집을 내려다보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샘터에 불도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아랫집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도 풍성해지며 저절로 기쁨이 넘쳤다.

문지방을 밟고 서성이는 나를 향해 어머니는 소리치셨다. "내려와라, 복 나간다!" 문지방을 밟으면 역병이나 잡귀 등 불운을 막아주고, 장손의 길을 막거나, 복이 나가고 귀신이 노 한다는 게 그 이유였는데 자라서 생각해보니 집의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문지방을 소중히 다루었던 것이다. 문지방을 밟고 서 있는 두 세계에 대한 중용 의미는 나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내게는 확연히 다른 두 그룹의 가족들이 있다.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전답 몇 떼기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올리기 위해 다섯 딸과 두 아들의 팽팽한 분쟁이 계속되었다. 나는 양쪽 어디나 속해 있었던 반면 어느 쪽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를 갖기도 했다. 아들은 볼일이 있으면 나를 통해 언니들에게 전했고 언니 또한 나를 통해 오빠들에게 전했다. 때문에 상대에게 섭섭함이 있으면 내게로 연락이 왔다. 나는 중간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전하자니 아픔이고, 안하자니 저들의 뜻을 몰라 더욱 오해를 낳았기 때문이다.

나는 경계인(境界人)이었다. 나는 양쪽을 오가며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복잡 미묘하고 좌고우면 할 수밖에 없는 고난의 길 한가운데서 나의 실체는 애뜻 하면서도 간절했다. 하지만 그것은 만용이었다. 열꽃으로 피어난 온몸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엄마가 문지방을 밟고 서면 복이 나간다고 혼내신 것은 바로 이런 결과를 염려해서 하신 말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저녁 무렵 친구 남편은 출하를 앞둔 새우를 건져 가져와 소금구이를 했다. 불기운이 닿자 굽은 새우등이 빨갛게 꼬부라든다. 오라버니의 격정은 먼 곳으로 떠나왔어도 휴식은 없었다. 등 굽은 부모님의 사랑은 측량할 길이 없건만 자식들끼리 등이 터진 우애는 끝 간 데 없어 보였다. 어느덧 달이 떴다. 달빛은 마을 뒤쪽에 멧봉우리를 타고 넘어가며 하늘과 경계인 지평선을 지웠다. 저렇게 밝고 자유로운 빛을 보며 배려와 욕심, 믿음과 반감이라는 조화 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경계를 허무는 월광이 내 가족에게도 비추기를 소원하고 있다. 언젠가는 볼 수 있을까, 그 평화로운 낯빛을, 지금 나는 또다시 문지방에 기대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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