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르는 것은 행위 이상의 것, 단순한 스포츠 활동이 아닌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살아있는 산악인의 전설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72)가 제1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를 찾아 이 같이 말했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는 1일 오전 영화제가 열리는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 산악문화센터 2층 세미나실에서 라인홀트 메스너 기자회견을 마련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메스너는 "산에 둘러싸인 이곳(영남알프스)에 오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영화제 기간 박물관도 방문하고 한국 산악인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방문이 끝이 아닐 것이라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회견은 메스너의 기념 영상 시청, 방문 소감, 질의응답, 핸드프린팅 순으로 진행됐다.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이 끝난 뒤에는 조직위원장 신장열 울주군수와 메스너가 감사패 수여식 및 기념품 교환식을 가졌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와 메스너가 교환한 기념품은 이탈리아의 200년 전통의 암빙벽 장비업체 '그리벨'에서 특별 제작한 피켈과 카라비너다.

영화제측은 소태나무로 만든 산모양의 감사패를 메스너에게 전달했다. 교환식이 끝난 직후엔 메스너의 손 프린팅 행사가 진행됐다.

메스너는 이날 기자회견 후 오후에는 신불산 시네마에서 '태산을 움직이다'(Moving Mountains)란 제목의 특별 강연을 연다. 이어 사인회를 끝으로 이날 일정을 마무리 한다.

이탈리아 남티롤 출신인 라인홀트 메스너는 1978년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무산소 등정 했으며, 낭가파르밧 '단독 등정'이라는 세기의 기록도 남겼다.

특히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해 살아있는 산악계 전설로 불린다.

다음은 메스너와의 일문일답

-한국에서 첫 산악영화제가 열렸는데.

"세계적으로 영화제는 많지만 알피니즘(alpinism)을 다루고 있는 영화제는 많지 않다. 이탈리아 트렌토 영화제와 캐나다 밴프영화제가 알피니즘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등반을 한다는 것 단순히 육체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철학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행위 이상의 것이다.

유럽의 알피니즘은 200년 역사가 있다. 한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생각한다. (알파니즘이) 어떠한 과정으로 진화했는지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훌륭한 영화제로 성장하리라 믿는다."

-단독 등반할 때 '고독'은 어떻게 이겨냈나.

"모든 탐험을 혼자서 한 것은 아니다. 3500여회 산을 올랐다. 한두차례는 완전히 혼자서 갔다. 고독을 이겨내기 위해서였다.

혼자서의 시간을 가지면서 고독을 이겨내는 연습을 했다. 고독이라는 자체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이다. 인간은 유한하지 않고 언젠가는 죽을 것이고, 죽을때는 혼자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생각하는 진정한 산악영화제는.

"산악영화제는 문화행사가 돼야 한다. 등반을 한다는 것에 있어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등반한다는 것 자체가 심오한 문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캠프를 여러개 거쳐서 올라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등반하면서 산과 인간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인간이 어떤 변화를 거치는지 이것들을 영화제에서 소개하게 된다.

자신의 경험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것이 문화다. 문화에 대해 얘기할수록 영화제는 더욱 강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암벽등반은 좋은 스포츠이긴 하지만 진정한 등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67권의 책을 썼다. 이 중 한국어로 번역 소개된 책 26권이다.

"한국어로 그만큼 많은 책이 번역됐는지 몰랐다. 제가 가지고 있는 산에 대한 철학, 관점이 한국에서도 공감한 것 같아 기쁘다."

-한국 산악인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1970년대 이후부터 한국 산악인을 많이 만났다. 낭가 파르밧에 갔을 때 한국 탐험대가 눈사태로 비극적인 일을 겪었다. 저도 역시 그때 친구 2명을 잃었다.

알피니즘은 50여년전에도 있었지만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었던 일은 아니다. 그때는 미국, 일본 위주였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한국 산악인 역시 고산을 등반하는 데 있어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새 책을 발간했다고.

"두 분의 알파니즘 학자와 함께 책을 냈다. 유명한 산들인데 이 산들의 이야기를 전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산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지, 접근 방식과 태도가 어떻게 변하는지 이야기 하고자 했다.

단순히 등반의 역사를 다루는게 아니라 주요 산악인들이 등반을 하면서 경험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인간은 유일하게 위험한 일을 추구하는데 왜 그런건가.

"인간이 유일하게 등반하는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등반을 해서 조사를 하는 존재다. 등반은 원숭이가 더 잘한다.

그럼 굳이 왜 등반을 할까. 기어 올라가는 행위는 본능에 의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고산을 등반하는 문제는 다른 문제다. 단순히 스포츠 활동이 아니라 자연을 감당해야 하는 행위다.

인간은 수천 년 동안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은 본능적으로 불가능을 정복하려는 게 아니라 불가능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탐험을 한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영남 알프스에 케이블카를 설치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케이블카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등반과 관광은 구분해야 한다. 관광을 위해서는 인프라가 필요하다. 스키를 타는 사람, 경치를 보려는 사람들에게 케이블카는 필요하다.

알피니즘은 다르다. 알피니스트가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관광을 위해 산을 오르는 것은 등반이 아니다.

최근에는 에베레스트 관광이 늘고 있다. 몇 만 달러를 들여 에베레스트 곳곳에 밧줄 등 장비를 설치하고 있다. 이것은 알피니즘이 아니라 관광이다. 에베레스트 정상 등반이 관광이 이제 됐다. 앞으로 산악인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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