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쯤 꿈꾸었을 시인이 될 수 있는 싸구려 우동집. 그곳에 가면 사면 벽 가득히 덕지덕지 붙은 낙서투성이가 도통 낯설지 않게 뵈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
 60~70년대를 연상시키는 찌그러진 양재기하며 소품들 하나하나가 정겹고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우동 한 그릇. 그 속에 피곤한 삶의 무게를 내려놓으며 담아내는 고만고만한 사연들의 착한 우리네 이웃들과 언제나 쉽게 만날 수 있다.
 누구나 처음엔 이 빼곡이 들어찬 너절하기 그지없는 낙서더미에 다소 혼란스럽기도 하겠지만 말못한 하소연을 예다 쏟아부었겠거니 생각하면 절로 머리가 끄덕여 지리라.
 문을 열고 들어서면 주방 정면에 어눌한 필체로 눌러 쓴 낙서 하나가 삐딱하게 붙여져 있다. 「처용가」라 쓰여진 이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내용이 낙서중 단연 백미(白眉)라 하는 사람도 있다.
 「지갑을 분실하였다. 누군가 필요해서 가져갔겠지. 마누라를 도적맞았다. 누군가 필요해서 가져갔겠지」.?K시인의 낙서이다. 어찌어찌 해서 우여곡절을 겪더니 그가 홀아비가 된지도 3년이 넘었다.
 미뤄 짐작하길 그를 불어터진 우동의 면발처럼 후줄그레하고 무미건조한 삶의 연속이겠거니 생각하기 쉬우나 얼굴 표정엔 작은 그늘 하나없이 늘 신명에 젖어 우동집을 찾는 이들에게 기타연주로 오히려 흥을 돋궈주곤 한다.
 찾아오는 이 뜨음해 휭한 적막감마저 드는 주말의 오후. 우동집 가까이 「시인의 공원」을 에워싼 느티나무 몇 그루만이 오도카니 회색 하늘을 괴고 있다. 주인 강시인의 말대로 아마 저들도 화려하게 움돋아 그늘 지울 봄을 꿈꾸고 있겠지. 가끔 시낭송회가 공원에서 개최되는 이른 저녁이면 멀리서도 단골처럼 찾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시와 음악이 있고 허심탄회한 얘깃거리가 질펀한 분위기가 마냥 좋아서란다. 봄이면 조팝나무 꽃을 한아름 꺾어들고 찾아오는 불혹의 여인도 있고, 손수 글과 그림을 그려 4년째 사회를 맡고 있는 내게 따뜻한 눈망울로 자작시를 낭송한 후 건네주던 백발의 시인도 있었다.
 『먹고 살아가기도 힘든 세상에 시나 음악이 뭐 대수겠느냐떋뺨?말이 올해는 이 예향의 도시에서 제발 회자(膾炙)되지 않기를 바란다.
 가까이 기타 반주에 맞춰 K 시인의 호소력 있는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정월의 노래가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떋?/ 충일중학교 행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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